가족이야기

2007년 4월 가족이야기(텔레비 소리 좀 줄여 주세요)

단계와 넓은여울 2012. 8. 24. 12:18

텔레비 소리 좀 줄여요.    http://blog.joinsmsn.com/psb1026/7803205

일요일 밤 11시가 넘어 집에 도착했다.
물론 부모님께서 그때까지 기다리고 계셨다.
'고생했다. 피곤할테니 씻고 들어가 자거라.'
'괜히 내려가서 돈만 많이 쓰고 왔구나.'
산소 다녀온 소식이 궁금하셨을텐데 아들 걱정이시다.
'기차에서 계속 잤는데 피곤할게 뭐 있겠어요.'

어제는 일찍 퇴근을 했다.
하루종일 기다리셨을 부모님의 궁금증을 풀어들이기 위해서다.

저녁을 먹는데 어머니께서 먼저 앞에 앉으신다.
아버님이 어머니께 VIP석을 뺏기신 것이다.
소파에 앉아 TV보고 계시는 아버님도 신경은 온통 이쪽이다.
아버님도 들이시라고 일부러 큰소리로 얘기를 했다.

'텔레비 소리 좀 줄여요.' 어머니의 한마디.
'안 들리니까 그러지.'
'안 들리면 듣지 않으면 되잖아요.'
'뭐라고 그러는 거야?'
'뭔 텔레비 소리를 집안 떠나가게 틀어 놔요.'
'사사건건 들고 나서는 버릇은 어디서 배운거야, 도대체.'
'알았으니까, 아버지도 일루 와서 앉으세요.'
못 이기는체 옆에 앉으신다.
'다 들었으면서 뭘 또 들을 얘기가 있다고....'
'또 그러네, 당신은 다 들었으니까 그러지.'
'알았어요. 당신 혼자 다 들으시구랴.'
어머니는 거실소파로 가셔서 앉으신다.
아버지의 끈질긴 반복적인 질문이 계속된다.
똑같은 얘기를 또 물으시고 또 물으시고....
똑같은 얘기라도 듣고 또 듣고 싶은 마음이신게다.
'아침에 큰집, 작은집 전화하구선 뭘 또 물어 볼게 있다구...'
'큰어머니가 니가 돈 많이 썻다고 하시드라.'

큰집, 작은집, 작은고모, 산소 갔다온 얘기....
모두 이미 팔순이 넘었고, 큰아버님은 아흔하나를 넘기셨다.
현재로는 우리 아버님이 건강상으로 가장 걱정인 상태다.

십수년전에 부모님 산소는 천안공원묘지에 마련을 했드랬다.
그 당시 어머니께서 거의 죽을 고비를 넘길 지경이 되어,
산소자리와 수의를 미리 마련하면 차도가 있다 하여 급하게 마련했었다. 
아버니꼐서 선산은 너무 멀어 내려 오기 어려우니,
우리들이 한번이라도 더 올 수 있는 곳이 좋다고 하셨다.
그 덕으로 아직 살아계신걸로 나는 믿고 있다.

'다 물어 보셨으면 들어가 주무세요.'
'들어가지 말라고해고 들어갈거네.'

 


 

 

 더 드시고 밀어 내세요.    http://blog.joinsmsn.com/psb1026/7830633

일요일 아침식사는 부모님과의 오붓한 시간이다.

식탁과 싱크대 사이를 몇번을 분주하게 오고 가신다.
며느리 눈치 한번 슬쩍 보곤 또 가시고,
눈이라도 마주치면 내쪽으로 슬쩍 반찬 밀어 놓으시고...

'뭘 가지러 가긴 갔는데 생각이 않나네.'
'엄마도 이젠 앉아서 식사하세요.'
'얘기해서 들을 사람이냐, 놔 둬라.'

'또 뭐 하러 가세요.'
'먹을 물 뎁혀야지, 니 아부지 냉장고 물 차가워 못 마신다.'
'식사 다 하시고 하세요.'
'놔 두라는데도 너는 아침마다 웬 참견이 그리 많으냐.'
'식사중에 왔다 갔다 하시면 제가 불편해서 그래요.'
'불편하면 나중에 너 혼자 천천히 먹어라.' 결국 아버지의 역정.

'드시다 말고 어디 가세요.'
'갑자기 X 이 나오려고 그러네.'
'식사하다 추접스런 짓은 혼자 다 한다니까.'
'갑자기 마려운걸 어떻게 해, 그럼.'
'가시려거든 이것 마저 들고 가세요.'
'마려울때 가야지, 기다리다 가면 다시 안 나와.'
'그러니까, 이것까지 먹고 가면 밀어 내기라도 하잖아요.'

정말로 심각하게 말씀하시는 어머니의 표정.
ㅎㅎㅎㅎㅎㅎ 나는 결국 웃고 말았다.

 

누나(1)     http://blog.joinsmsn.com/psb1026/7873113
나는 괜히 누나만 보면 눈물이 날려고 그런다.
없는 살림에 아들에 치여 학업도 제대로 받지를 못했다.
좋은 세월 제대로 경험해 보질 못한 삶을 살았지만,
불평, 불만 한번도 해 본적이 없는 그런 분이다.
내가 군대가던 해인 75년에 결혼을 했는데,
매형이란 사람이 누나한테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내가 반쯤 죽여버리겠다고 다짐해 본적도 있었다.
그 매형은 누나보다도 더 착한 분이시다.

당신이 못한 공부시킨다고 온갖 고생끝에 조카애들 대학까지 졸업시켰다.
그나마 효심이 지극한 서른이 넘은 딸 , 아들이 돈벌이 하고 있으니,
큰 다행으로 여기고 애들 결혼 걱정만 남았다고 하셨는데... 

환갑이 다된 나이인데도 가만 있지를 못하여 용돈이라도 번다고,
몇년전에 별정직으로 전환되었어도 직장을 다니고 있다.
앞으로 1년은 더 일 할 수 있다고 하신다.
그런 누나가 요즘 치아가 매우 아파서 식사하기도 어렵다고 한다.
엊그제 일요일 부모님께서 내가 들을까봐
일부러 낮은 소리로 하는 얘기가 귓가로 들렸다.
치과 비용이 수백이 들어가야 하는가 보다.

누나는 육이오가 나기 바로 전해에 태어났다.
전쟁이 나자 아버지는 가족을 이끌고 배를 타고 6개월을 바다에서 지냈다고 한다.
여순사건때 너무나 혹독한 시련을 겪어 아예 바다생활을 했다고 한다.
'수지 에미는 피죽도 제대로 먹질 못하고 자라서 건강하지를 못해.'
누나만 보면 어머니께서 항상 안타까워 하시는 말씀이다.
바다생활을 6개월이나 하셨으니 식량이 제대로 조달 되었을리 없고
젖이라도 제때 나올리 만무하다.
그래서 그런지 누나는 몸이 허하고 지금도 약을 달고 살고 있다.
그러나 머리가 비상하고 근성과 끈기는 우리식구중 으뜸이다.
공부를 제대로 시켰으면 여장부가 되었을 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어머니 말씀에 따르면,
여순사건때 가재도구 하나 건지지 못하고 집이 다 타버렸다고 한다.
20대에 자기집을 가졌으니 그당시엔 조금은 살만했던 모양이다.
시내가 온통 불바다였다니 오죽 했으랴.
주야로 피아가 바뀌는 세상이었단다.
낮에는 국방군 세상, 밤에는 반란군 세상.
대낮에 진남관에 사람들을 집합시켜 놓고 걸핏하면 그냥 총살이었단다.
옆에서 사람이 죽어가고 시체를 밟아도,
그때는 무섭지도 않았고, 눈물도 나오질 않았다고 한다.

국방군이 사람들을 진남관으로 줄지어 몰고가는데.
아버님 허리띠에 총알이 스친 자국이 발견되어,
어머니께서 허리띠를 얼른 빼서 버렸는데,
뒤따라 오던 젊은이가 주어서 매었다고 한다.
그런데 저만치 앞에서 군인들이 허리띠 없는 사람만 골라 내어선
그대로 쏴 버렸다고 한다.
어머니는 머릿속이 하얀 백짓장이 되어 아무 생각도 들지 않더란다.
마침 앞서 가던 사람이 허리띠를 두개 차고 있어서
사정사정하여 하나를 얻어 아버지께 드렸다고 한다.
진남관 마당에 집합해 앉아 있는데,
총알이 스친 자국이 있던 허리띠를 매었던 그 젊은이를 골라 내더니,
빨갱이라고 하면서 그대로 쏴 죽이더란다.

'잊어 먹으니까 살지...' 가끔 어머님이 한탄 하시는 소리다.


기숙사에 가만히 있어라.      http://blog.joinsmsn.com/psb1026/7883969
하필이면 한국사람이었는지.
애들 생각에 잠이 제대로 오질 않는다.

'학교 끝나면 어디 돌아 다닐 생각말고 방에 그냥 있어라.'

'애들한테 전화했어요.'
'목소리는 씩씩하던데요.'
집사람만 다그치고 있다.

얼른 방학되어 들어 왔으면 좋겠다.
아무 생각이 나질 않는다.
애궂은 이메일만 계속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