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국민들에게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은 자긍심을 불러일으키는 데가 있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드문 나라인 것도 사실이다. 문화적인 자긍심 역시 지난 몇 년간 케이팝과 영화 등 문화 컨텐츠의 수출을 통해 조금씩 상승했다. 여러 사회문제가 있지만 한국은 스스로 그 문제들을 고쳐가면서 성장해 온 국가였다.
모두 하릴없었다. 한국인들은 지난 1주일 남짓한 시간 동안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을 겪었다. 아이들이 물속으로 가라앉는 것을 생방송으로 지켜보는 나라. 그게 바로 한국이었다.
쏟아지는 보도를 정리하면 이렇다.
세월호는 언제라도 대형 참사를 낳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불량품이었다. 사고가 나자 신고를 한 학생보다 선장과 승무원이 제일 먼저 탈출했다. 맨 먼저 신고한 학생은 시신으로 발견됐다. 국민의 생명을 지켜야 할 정부의 재난 구조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구조 작업은 엉망진창이었다. 언론보도는 정확하지 않았고 선정적이었다.
정치인들은 술판을 벌이고 실종자 가족을 모독하는 발언을 일삼으며, 심지어 사고 현장을 기념촬영의 배경으로 삼으려 했다. 인터넷의 몇몇 공간들은 여전히 무시무시한 악성댓글로 넘쳐났다.
2014년의 대한민국은 허울 좋은 불량국가다. 아이들을 추모하는 눈물만으로 끝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많은 이들이 삶의 터전인 한국이라는 국가를 마음 속에서 재점검하기 시작했고, 결국 분노가 터져 나왔다.
그 분노들은 다음과 같다.
노컷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이번 사고로 작은딸을 잃은 한 여성(50)은 대한민국을 버리겠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다 정리하고 떠날 거에요. 나 대한민국 국민 아닙니다. 이 나라가 내 자식을 버렸기 때문에 나도 내 나라를 버립니다.” 노컷뉴스 보도
그는 언론의 보도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부모들이 오보에 놀아난다는 식으로 보도해요. 정부는 정말 잘하는데 부모들이 조바심이 난다고요. 290명 넘게 갇혀있었는데 한 명도 못 구하면 이상하다고 생각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구조하겠다는 의지도 없이 구조한다고 발표한 걸 그대로 받아서 방송에서는 열심히 구조하고 있다고 거짓보도 했어요. 노컷뉴스 보도
실종자 가족들은 청와대로 향하고 싶었다. 언제든 연락하라던 대통령을 만나러 가는 길은 진도체육관 앞에서부터 저지당했다.

20일 새벽 실종자 가족들이 정홍원 국무총리의 차를 가로막고 청와대 항의 방문 저지를 하지말아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인터넷 공간에는 불통의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분노의 목소리가 하루 종일 태풍처럼 몰아쳤다. 분노의 끝은 대한민국에 대한 부정이었다.
15년 전 청소년 수련원 씨랜드 화재로 아이를 잃고 이민을 떠난 이의 눈에 한국은 여전히 희망이 없는 나라였다. 국가대표 필드하키 선수로 당시 씨랜드 화재 사건으로 아이를 잃은 뒤 국가로부터 받은 훈장을 반납하고 뉴질랜드 이민을 떠났던 김순덕씨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말했다. “유족 분들과 통화를 했는데 저희 때와 다를 게 아무것도 없이 변한 게 없구나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언론은 이런 분노를 제대로 전하지 않는다. 외국 언론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독일의 ‘디 자이트’는 17일 한국 국민들이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분노가 가득하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박 대통령이 사고 현장을 방문해 부모를 잃고 막 구조된 6세 여아와 사진을 찍는 것을 한국민들이 비판하고 있다고도 전했다. '월스트리트저널'도 지난 18일 “정부의 안일한 대처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생생히 드러나고 있다”고 적었다.
그러나 한국인의 분노는 쉽사리 사라질 것 같지 않다. 연세대 박명림 교수는 ‘한겨레신문’에 "이 못난 나라의 ‘패덕’을 부디 용서하지 마라"고 썼다.
우리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유일 선진국이라는 자만에 더해, 전자·반도체·조선·철강·자동차를 포함한 첨단산업들이 세계 선두권이라고 자랑해왔다. 금번 사태를 야기한 조선산업과 해운산업 역시, 전자는 주요 국제비교지표(수주량, 수출액, 수주 선박당 평균 표준화물선 환산톤수)에서 장기간 세계 1위였고, 후자는 세계 5·6대 강국을 넘나들었다. 속도의 상징인 통합전자정부지수와 인구 백만명당 인터넷 가입 건수도 세계 1위였다.
기술과 산업, 첨단화와 정보화의 이 휘황한 세계 선두권에도 불구하고 급박한 인간위기상황이 도래하자 모두 무용지물이었다. 안전지침, 초기 연락, 위기 대응, 인명 탈출 안내, 구조작업, 정부의 합동 대처는 리더십과 책임감, 신속성과 첨단성, 통합지휘체계의 어느 것도 보여주지 못했다. 우왕좌왕 상태에서 배가 ‘가라앉고’ 꽃다운 생명들이 ‘죽어가는’ 실제 상황을 눈뜨고 바라보고만 있었다.
상황의 긴박함, 가족들의 절실함과는 달리 정부는 지리멸렬하였다. 생사를 가를 결정적인 상황 초기, 정부는 지휘 중심도 책임 핵심도 없었다. 전시도 아닌데 서로 미루고 허둥대다 눈앞에서 젊은이들이 ‘죽어가는’ 실황을 지켜보고 있는 나라가 오늘의 대한민국이다. 실종자 가족들은 선실의 학생들처럼 오직 정부의 말을 믿고 기다렸다. 결과는 죽음이었다. 어려운 ‘수중인양작업’을 통해 ‘시신’을 건져내는 데 최선을 다하면서도, 촌각을 다퉈 ‘생명’을 구출해야 하는 ‘수상구조작업’이 절실할 때는 왜 사력을 다하지 않았는지 거듭 통탄하며 묻게 된다.
시시각각 늘어나는 팽목항의 사망자 현황판은 시대의 대표 아픔을 증거한다. 최초 승선 시의 탑승자에서 생존자와 구조자로, 다시 실종자로, 그리고 끝내는 사망자로의 창졸간의 급변은 정부의 유능과 무능이 국민들의 생과 사의 갈림길임을 뚜렷이 보여주고 있다...
청년들은 이 못난 세대, 불행한 조국의 현실을 기필코 혁신하라.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나라를 발본적으로 뜯어고치라. 이 패덕의 세대, 야만의 국가를 부디 광정하라.
우리는 지금 분노의 시대를 통과하고 있다.
허핑턴포스트코리아 | 작성자 구세라 게시됨: 2014년 04월 22일 19시 38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04월 24일 11시 28분 K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