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이야기

나무보다 못한 삶

단계와 넓은여울 2015. 4. 6. 23:38

한 번 뿌리를 내리면 숙명처럼 평생 그 자리를 떠날 수 없는 나무,

불평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한결같이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나무,

겨울의 추위를 앙상한 알몸으로 견디는 초연함을 가진 나무.

아무리 힘이 들어도 매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한결같은 나무,

그리고 이 땅의 모든 생명체와 더불어 살아가려는 마음을 가진 나무.

한 그루 나무에게서 자신이 살아야 할 삶의 가치를 배웠다.

(우종영 저 '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 중에서)

 

“나도 사는데, 너는 왜 아까운 생명을 포기하려고 하는 거니?”

높은 산벼랑 위에 서 있는 나무가, 삶의 의미를 잃고 생을 마감하려고 산에 올라갔던

‘우종영’ 씨에게 건넨 말입니다. 농사일마저 실패하고 서른 살이 되도록 제대로 한 것이

없다며 삶을 놓아 버리려고 하던 찰나, 나무가 그를 붙잡았던 것입니다. 

사실, 모든 피조물에게는 이렇게 숙명처럼 살아 내야 할 자신의 자리가 있습니다.

나무들이 비록 척박한 땅일지라도 처음 뿌리를 내린 자리에서 살아 내는 것처럼,

우리 인간도 예외는 아니어서, 때로는 살고 싶지 않아도 살아야 할 자리가 있습니다.

제 십자가를 지고 산다는 것은 모든 피조물이 그러하듯,

받아들이고 싶지 않지만 안고 살아야 할 운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제 십자가를 지고제 갈 길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제 십자가를 지고예수님을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운명처럼 지고 사는 삶의 어려움들을 예수님 안에서 바라보며

그 의미와 가치를 찾으라는 것입니다.

내가 벗어 버리고 싶은 삶의 십자가가 그분 안에서는 우리 삶의 의미가 되고,

우리 구원의 도구가 되기 때문입니다.

(매일미사 (2011 3 10일 목요일) '오늘의 묵상' 중에서)

 

움직이지 못하는 나무만 태어난 자리를 떠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은 누구나 똑같다. 태어나는 엄마를 내가 선택할 수 없다.

그러나 각자에게 다가오는 운명은 천양지차다.

 

태어나보니 찢어지게 가난한 집이거나 아니면 재벌 2세로 태어난 사람이 있고,

잘 생기거나 아니면 지지리도 못생긴 얼굴로 태어난 사람이 있다.

태어나 보니 부모가 아주 훌륭한 사람으로 아니면 평범한 사람으로 태어난 사람도 있다.

태어나 보니 머리가 아주 영리한 사람으로 아니면 돌대가리로 태어난 사람도 있다.

태어나 보니 좋은 쪽으로만 골라서 아니면 나쁜 쪽으로만 골라서 태어난 사람도 있다.

태어난 것이 누구의 탓인가? 선택의 문제인가 말이다.

 

그러나 사람은 나무뿐만 아니라 다른 여타의 동물과 달리 철이 들면서부터 바로 이 선택의

게임을 시작하게 되는 것이며 누구에게나 바로 이 선택의 순간이 다가 오게 된다.

화투 패가 나쁘면 지는 확률이 높으나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경우도 많다.

최선을 다해서 치다 보면 설사(?)한 것을 가져 오기도 하고 뒷패가 잘 맞을 수도 있다.

참담한 패를 받고 태어난 사람에게도 선택의 기회는 찾아오게 마련인 것이다.

사람에게 살아간다는 것은 늘 이렇게 선택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순간순간의 선택 중 아주 결정적인 선택이 몇 번 찾아오게 되는데

이 선택이 결국은 일생을 결정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네 인생도 한 순간의 결정이 인생을 좌우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공수래 공수거라 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좋은 것이 눈앞에 보인다고 급하게 먹으면 안 될 때가 많다.

그런 것일수록 설사(?)를 해서 탈이 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어차피 가져갈 것 하나도 없이 떠나가야 하지 않은가 말이다.

패가 나쁘다고 불평, 불만만 하고 있다 보면 선택의 기회도 놓치고 말기 십상이다.

묵묵히 최선을 다하다 보면 비 개고 맑은 날도 오는 것이다. 그것이 인생 아니겠는가.

우리 삶에서 끝까지 움켜쥘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지금 내 앞에 앉아있는 사람,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은 내가 미워해야 할 사람이 아니라

나와 함께 인생을 더불어 사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알면서도 져주는 선택을 할 줄 아는 것이 패배가 아니라,

결국 삶의 기쁨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나의 바램은 움직이지 못하는 나무보다 못한 삶을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두위봉(1,466m 강원도 정선) 3그루의 주목(1,300m 수령 1,400년. 천연기념물 433호(2002.6.29 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