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자리
매일 퇴근하고 현관문을 열고 "다녀왔습니다."하면서 거실 문 열고서
습관적으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보는 엄마의 방.
오늘은 그 방에 아무도 없었다.
깨끗하게 정돈된 엄마의 침대만 보였다.
"그래, 비 안 오지?" 습관적으로 물어 보시는 엄마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늘 앉아 계시던 거실 소파에 어머니는 안 계셨다.
그때서야 생각이 났다.
그래, 오늘부터 누나네 집에 가 계신다고 했지.
나는 거의 매일 새벽에 습관적으로 일어나 화장실에 간다.
나이가 들어 갈수록 방광이 짧아진 탓이리라.
볼 일을 보고 있노라면 열에 아홉은 "안에 누가 있어?" 엄마의 목소리다.
'예, 저예요.'
"천천히 나와도 돼. 급한 것 아니니까."
집사람이 깰까봐 주로 거실 화장실을 이용하는데, 그런데 꼭 그 시간에 엄마가 화장실을 찾곤 하신다.
아버지가 살아계실때는 다소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누구 안에 있냐?"
이제는 그 자리를 엄마가 대신하고 계시는 것이다.
오늘도 예외없이 어스름한 새벽 5시 화장실에 앉아 있는데(소변을 앉아 보는건 꽤 오래 되었다.)
밖에 아무런 인기척이 없다.
엄마가 계시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기다려도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아주 인기척이 없게 되면 어떻하나?
아니, 분명히 그런 날이 오고야 말텐데.
아버지의 그 다소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들리지 않게 된 것도 며칠후면 벌써 5년이 되지 않은가.
그런데 엄마는 그 인기척이, 그 목소리가, 그 냄새가, 아니 그 향기가, 그 빈자리가 다를 것 같다.
엄마의 빈자리를 내가 어느만큼이나 견딜 수 있을까, 얼마가 지나야 극복이 될까.
정말 자신이 없다.
지금이라도 살아 계실 때 실컷 마음껏 그 목소리를 듣고, 그 향기를 맡고 또 맡아 놓아야겠다.
전화라도 걸어 봐야지.
2009년 정월 어머니 여든 두번째 생신날. (저리 정정 하시던 모습은 어디로 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