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게 뭘 기대하고 있었는가?
퇴직 후를 어떻게 살 것인가?
나이 들어 가는 모든 사람들의 화두다.
은행 퇴직 후 우연한 기회에 공부하게 된 숲해설가 전문가과정을 통해 나의 정년 후 삶이 상당부분
좋은 방향으로 바람직하게 변화가 왔다.
숲해설가 활동을 하면서 그리고 환갑을 지나면서 10년후의 내 모습이 기대된다고 얘기했었다.
분명 지금보다는 훨 나은 모습으로 살고 있을거라고 자신도 했었다.
나의 현재가치 보다는 10년후 미래가치가 훨씬 더 나을거라고 믿기 때문이었다.
지금의 내가 아니라, 1년 후, 5년 후, 10년 후, 죽을 때의 내가 과연 어디쯤 가 있을까?
나를 아는 사람들이 수년 후 내가 어떻게 변해 있을까를 궁금해 하는 그런 나였으며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단한 자기계발이 필수일 것이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다방면으로 바쁘게, 보여주기 위한, 자기만족을 위한 자기계발은
결국 스스로를 피곤하게만 하고 말 것이다.
천천히 나이 70이 되어서도 할 수 있는 그러한 일을 찾으려고 노력 하려고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혼자서도 충분히 즐기면서 놀 수 있는 그러한 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이가 들어 가면서는 다른사람에 기대지 않고 혼자서도 즐길 수 있는 그러한 꺼리가 최우선이다.
은퇴 후의 노후준비와 노후대책이 아니라, 은퇴 후의 인생설계를 새롭게 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100세 시대라는데 살날이 30년도 더 남았으니 하고 싶고, 할 일들이 얼마나 많이 남아 있겠는가.
그러나 막상 지내 놓고 나니 환갑이 벌써 3년씩이나 후딱 흘러가 버렸다.
생각만 많았지, 바쁘기만 했지, 현직을 떠난지가 6년! 그동안 무얼 했을까?
은퇴 준비 연수 1년, 숲 공부한다고 1년, 어영부영 1년, 숲해설 활동 다닌다고 1년,
색소폰 배운다, 풀피리 모임에 쫒아 다닌다, 판소리 배우러 다닌다, 뭐 하나 제대로 마무리 된게 없다.
몸만 바쁘고 피곤했지 해 놓은게 없다.
한달동안 스케쥴만 빽빽하다.
별명이 없는 한 지속될 점심이 6번(x12), 저녁이 2번(x12), 숲해설 산행이 2번(x12),
격월/분기별 모임이 4번(x4), 반기 모임이 2번(x2)
판소리가 매주 1회(x50), 풀피리가 한달에 1회(x12), 동우회 동호모임이 1년에 12회.
빠지지 않고 참석하면 164회. 1년중 절반은 약속이다.
수시로 2탕을 뛰거나, 참석 못해 미안하다는 전화가 다반사다.
그리고 수시로 생기는 경조사(작년 부조한 153건중 50군데는 참석했겠지))와 돌발 약속까지 합하면
나홀로 시간은 없다.
더군다나 소모임의 회장이나 총무 직책이 5군데.
돈 벌거나 생기는 약속은 하나 없고, 모두 회비 내고 돈 쓰는 모임만 있는 셈이다.
옛날 같으면 한량이다.
이런 미친 짓거리가 어디 있겠는가.
도대체 내 시간은 어디에 숨어 있단 말인가?
무언가 하거나, 움직이거나, 하는 척이라도 해야 나의 존재의 이유가 있다고 믿어 왔던 생활 패턴.
내가 과연 제대로 살고 있는지를 잊고 살았다.
나는 그동안 뒤돌아 보지도 않고 큰 착각을 하고 살았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작년 1년동안 요추협착으로 아프고, 함께 사는 연로한 모친으로 걱정하고,
동우회 일 한다고 남은 기금이 얼만지, 부족한 예산을 어찌할지, 은행지원이 안 된다고 속 썩이고.
그러다가 환갑이 벌써 3년이 지나가 버렸다.
가족은 늘 그 자리에 있는 줄 알았다,
더구나 집사람은 언제나 든든히 우리집을 내 옆에서 늘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을 줄 알았다.
너무나 많은 욕심으로 큰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현재는 그 무엇보다도 집사람이 제일 걱정이 된다.
정년 후 5년이 기대된다고 했는데, 몸만 피곤하고 아프다.
다만, 귀엽고 아름다운 손자가 생겼고, 괴산집에 가서 쉴 수 있다는 여유가 유일한 행복이고 위안이다.
좀 더 여유를 가지자.
우정에 금 가거나, 신뢰에 흠이 되지만 않는다면 모임과 약속을 조금은 줄여보자.
괜히 내 인생을 남에게 보여주려고 까불대지는 않았는지 스스로에게 물어 본다.
괜히 내 몸을, 내 정신을, 결국 주제를 모르고 내 자신을 넘 혹사하지는 않았는지 반성해 본다.
그냥 있는 그대로 살자.
5년후, 10년후, 내 모습에서 도대체 뭘 기대하려고 생각했는가 말이다.
그냥 오늘 하루 현재를 있는 그대로 살자.
우선은 집사람이 제일이고 가족이 최우선이다.
오늘 보이는 사람이 또 내일도 볼 수 있는 것에 만족하고 행복해 하자.
하루 벌어서 하루 사는 그러한 삶이 되지만 않는다면 눈 뜨면 또 내일이다.
그게 행복이고 정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