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 같았던 친구의 죽음(2010.11.26. 10:56)
45년 절친이 우리곁을 영원히 떠나갔다.
직장암 수술한지 3년, 지리했던 항암치료도 헛되이 임파선, 위, 폐까지 전이 되었다고 한다.
비난 받아 마땅한 의사도 참 많다. 치질 수술을 했던 의사가 결국은 직장암을 키웠다고 생각한다.
치질 수술후 수년간 고생을 시키더니 암으로 악화되었으니 서울 큰병원가서 수술받으라고....
서울 큰병원도 마찬가지, 그렇게 갑자기 위, 폐까지 확산되는지 몰랐단 말인가 ?
부산으로 내려가는 발길이 천근만근이었다.

66년 보성중학교 시절부터 친구였던. 이문용(李汶鎔)
부산에서 유학왔다며 사직공원앞 내수동의 큰고모집에서 수송국민학교부터 다녔더랬지.
TV가 귀하던 시절이라 방과후 우리는 으례 큰고모집으로 향했드랬다.
혼자 사시는 분이시니 그곳에서 우리는 편하게 TV도 보고 놀 수가 있었단다.
물론 너는 큰고모님과 다툼이 참 많았고 어려워했드랬지. 내가 보기에 분명 성격차이였다.
사실 TV는 핑게이고 항상 네가 부담했었던 군것질 비용때문에 따라 다녔다고 봐야지.
물론 너도 알고 있었겠지만 너는 내색 한번없이 당연하다는 듯 계산을 했드랬다.
국제극장 골목 동영관 중국집의 짜장면은 참 맛도 있었다.
네가 결국 고려대 중어중문학과를 입학하게 된것도 무관하지는 않은게야.
중국음식을 유난히 좋아하던 너의 식성도 니 병과 관계가 많았던거야.
동영관 사장과 지배인과는 막연한 호형호제 사이가 되었으니...
대학 다닐때는 그곳에서 중국어 OJT를 했다고 봐야 하나...
대성학원 옆에 있던 풍미당 분식집의 냉면도 참 맛있었다.
덕분에 대학 떨어지고 대성학원을 다닌 1년동안 풍미당은 가질 않았다.
7명중 겨우 2명만 합격하고 5명은 재수를 했드랬구나. 재수하는 동안 우린 거의 만나지 않았다.
대학 낙방하고 2차 대학 원서도 넣지 않고 무작정 가출하여 부산 너희집에서 10일정도 머물때가 엊그제같구나.
막내동생 계용이가 정말 서럽게 울더구나. 국민학생이었던 막내가 말이다.

현철이네, 찬구네, 너희 식구들과 함께 거제도 내 막내처제집에서 16명 가족들이 놀던 때가 생각난다.
91년 우리 큰딸과 친구 아들 영우가 초등학교 1학년 여름 방학때지 싶다. 해빈이는 생일이 빨라 2학년이었지.
낮에는 같은 84년생이라고 반말하면서 잘 놀았는데, 저녁때 매일 일기 쓰는 숙제를 하면서 학년 차이가 난 줄 알고
해빈이가 반말하지 말라고 서로 다투던 일이 생각난다. 정말 그립고 보고 싶구나.

그 당시 우리의 물주, 이문용이를 다시는 볼 수가 없게 되었다.
상황이 좋지 못하다 하여 지난달 부산대병원에서 만난 것이 너와의 마지막이 되어 버렸구나.
그날 우린 무슨 얘기를 했었니?
서연이 결혼날짜를 좀 댕겨서 함께 입장하며 데리고 들어가고 싶다는 얘기....
친구가 서울에서 내려와서 그런지 오늘은 기분이 아주 좋다는 막내동생 계용이의 얘기.
너가 퇴원하면 지리산집에 친구들과 놀러오라던 첫쨰동생 휘용이 얘기....
그래서 그런지 그날 너는 넘 말을 많이한다 했더니 언제이지도 모르게 잠이 들어 버렸더구나.
숨을 몰아 쉬며 잠을 자는 너의 얼굴을 잠깐 만지곤 떠나온게 마지막이 되었다.
2달만 더 살지 그랬니. 큰애 결혼하는건 보고 가도 늦지 않을걸.
순대같은 너의 입술에서 나오는 구수한 사투리가 너무도 듣고 싶구나.
참으로 너한테 갚아야 할 것들이 너무도 많은데 말이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내가 은퇴하여 직장 그만다니게 되면 자주 내려간다는 얘기만 하다가...

형제같은 친구가 두세명만 있어도 인생은 잘 살았다고 한다는데, 형제같이 지내던 친구가 3년사이에 둘이 세상을 떠났다.
벌써 두명이나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니, 이젠 내가 해야 할 일이 아주 명확해졌다.
살아있는 형제처럼 지내는 친구들의 건강을 내가 챙겨주거나, 나도 함께 저 세상으로 가버리는 것이다.
後자는 나를 포함하여 우리가족 그리고 친구녀석들도 싫어 할테니 前자에 충실하는게 정답일게다.
前자에 문용이 너도 동의하겠지.
할 수 없구나. 니가 너무 빨리 우리곁을 떠나갔으니 니가 기다리는 수 밖에 없어.
심심하다고 우리들를 앞으로 20년내에는 데려갈 생각일랑 하지 마라.
대신 20년동안 니가 할 일들을 내가 몇가지 알려줄꼐.
금슬좋으시던 부모님 만나뵙고 왜 이리 빨리 불렀느냐고 투정 좀 부려라.
네가 중학교떄 오랜만에 서울 올라오신 엄마한테 짜증부리던 그런 말투로 말이다.
참 그땐 너가 3대 독자 외아들이긴 하지만 정말 못된 아들이라고 난 생각했다.
그리곤 큰고모님한테 우리 안부도 전해 주시고...
네가 중국출장가느라 문상 못한 우리 아버지도 만나 뵈었으면 좋겠다.
이젠 모든것 잊고 마음 편하게 사시는지 모르겠다. 네가 대신 아들 노릇도 해 주었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2년전에 그곳에 가 있는 이용남이란 녀석 좀 수소문해 봐라.
대학친구며 은행도 같이 들어온 정말 너 다음으로 좋은 녀석이다. 나중에 우리 모두 함께 할 친구다.
너는 신참이니 그녀석한테 잘 보여야지 않겠니. 제발 술은 좀 줄아라고 해라. 술 때문에 죽은 친구야.
내 얘기하면 틀림없이 잘 봐 줄거다.

내 친구, 문용아.
참으로 덧없는 인생이다.
무얼하며 살다가 죽어가는 것이니.
주위에서 아는 사람이 죽었다는 부고를 듣기전까진 또 망각하며 살지.
문상을 가고 나서야 또 내가 무얼하고 살고 있는지를 심각하게 고민하는거야.
그러다 그러다 우리는 죽어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터 잘 잡고 살아라. 돈도 좀 벌어 놓고.
그래야 니가 좋아하는 우리들 군것질 또 사주지 않겠니.
너룰 그리워하고 고마워하고 미안해하고 아까워하고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을 보았다.
그만하면 훌륭히 살다 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가족들에겐 미안한 마음은 꼬옥 가져야 한다.
네가 사랑하는 해민이 서연이 우리가 나름대로 살펴보마.
모든 걱정거리 훌훌 털어 버리고 편안하게 떠나기를 하느님께 기도 드린다.
니 친구 선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