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분의 말다툼 소리라도 오래 듣고 싶다.(1)
두 분의 말다툼 소리라도 오래 듣고 싶다.
박선배 psb1026@hanmail.net
엊그제가 아버지 생신날이었다. 돌아 가신지가 14년이 지났다. 그러고 보니 엄마도 7년이나 되었다. 일곱 살 차이인데, 7년 터울을 두고 똑같이 아흔 되던 해 7월 초와 말에 돌아가셨다. 부모님이 럭키 세븐을 좋아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가끔 부모님이 생각나면 그 당시에 끄적거렸던 블로그의 글들과 사진들을 보고 그리움을 조금이나마 달래 보곤 한다. 그 당시 나는 주로 사무실에서 업무 시작 전에 글을 썼던 모양이다.
부모님의 선문답 ( 2007-02-06 08:42:31 )
일요일 저녁 먹고 거실에서 부모님과 TV를 보고 있었다. 애들이 있었으면 오락프로를 보고 깔깔대는 웃음소리라도 들릴텐데, 유학 가 있는 딸들이 보고 싶다. 그래도 부모님이 살아 계시어 함께 TV라도 볼 수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가.
Dubai Desert Classic 골프 중계를 보고 있었다. 엄마는 별로 재미가 없겠지만, 그래도 중간중간 웃지 않을 수 없는 뜬금없는 멘트를 하곤 한다.
13번 홀 선두 어니엘스의 공이 벙커에 빠졌는데, 3rd 샷이 곧바로 홀로 빠져들어 가면서 깃대에 걸쳤다. 멋진 버디.
'아이쿠, 구멍에 공이 걸려 들어가질 않네.' 어머님의 안타까움.
'깃대에 걸린 건 그냥 들어간 거야.' 그것도 모르느냐는 듯한 아버님의 표정.
14번홀 타이거우즈의 홀엣지 칲샷이 그대로 버디.
'쟤가 나오면 다른 애들은 그냥 얼어 버려.' 아버지의 골프선수도 좀 안다는 듯한 말투.
로드 피셔의 퍼팅이 홀을 살짝 지나쳐, 볼마크를 하고 공을 집는다.
'안 들어가니까 화가 났는지, 하지도 않고 공을 집어 버리네.' 어머님의 의아하다는 말씀..
'순서대로 하는 거야, 늘상 보면서도 그것도 몰라가지고는.' 아버님의 핀잔.
어니엘스의 멋진 벙커 샷을 슬로비디오로 다시 보여준다.
'저 선수는 아까 했는데, 또 치는 거냐.' 엄마의 궁금.
'아까 한 것 다시 보여 주는거야.' 아버지의 또 다른 핀잔.
'옆에 서서 구경하는 사람들은 다리가 많이 아프겠네.' 엄마의 걱정.
'오늘 하루종일 하는데, 저건 한번 시작하면 몇 시간이나 하는거냐.' 엄마의 질문.
'오래하지, 아마 대여섯 시간씩 걸리지.' 아버님의 느긋한 답변.
'우리가 치면 다섯 시간쯤 걸리는데, 시합은 보통 4시간 좀 더 걸려요.'
'당신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할 줄도 모르면서 어찌 그리 많이 아세요.' 참았던 엄마의 퉁명스런 대꾸.
'내가 왜 할 줄 몰라, 돈이 없어 못 했지.' 괜한 아버지의 화풀이.
'오늘은 왜 아직까지 자러 들어가시지도 않아요.' 엄마의 결정타.
“들어가지 말라고 해도 들어갈거네.“.
아버지 하루의 일과가 뉴스와 스포츠 중계 TV 시청이었으니 골프뿐만 아니라 다른 운동경기에서도 거의 개그맨 수준의 대화가 이어지곤 했다. 매사에 아버지가 한마디 하면 전적으로 아버지 편을 들다가, 내가 다른 의견을 얘기하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도 언제 아버지 편이었느냐는 듯이, 곧바로 내 편을 든다. 그러다 결국엔 서로가 아무 소득도 없는 말다툼을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그 당시에도 나는 두 분의 말다툼이라도 좀 더 오래 들었으면 싶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