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내 곁에 항상 있었지만 그 존재를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나무를,
한번 뿌리를 내리면 평생 그 자리를 떠날 수 없는,
그러나 결코 불평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나무를,
순간 삶을 포기하려고 했던 서른이 다 된 나이에 만났다.
나무가 살아있는 생명체이며, 더불어 살아가는 친구임을,
그래서 함부로 치료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신을 대신해 사람 목숨을 구하는 게 의사의 소명이라면,
나의 소명은 신을 대신해 자연을 대신해 미약하나마 나무의 목숨을 다루는데 있다.
겨울이 되면 가진걸 모두 버리고 앙상한 알몸으로 견디는 초연함에서,
아무리 힘들어도 매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한결같음에서,
평생 같은 자리에서 살아야 하는 애꿎은 숙명을 받아들이는 의연함에서,
이 땅의 모든 생명체와 더불어 살아가려는 그 마음 씀씀이에서
내가 정말 알아야 할 삶의 가치를 배운다.
나무에게 작은 눈길이라도 주었으면, 나무와 친구가 되고픈 삶이 늘었으면,
그래서 나무가 더 이상 아파하지 않고 우리와 더불어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추천사 :
사람들 곁에는 나무가 있었다. 그 나무들은 각박했던 우리 삶에 작은 위안을 주었다.
그러나 산과 들이 깍여 나가고 그 위에 도시가 들어서면서
어느 순간 우리는 우리에게 녹색 빛 여유로움을 주던 나무들을 잊어가며 살고 있다.
우리 주변에 있는 나무와 친구하면서,
나무가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1장 그곳에 나무가 살고 있었네.
<천년의 사랑 : 주목나무>
살아 천년, 죽어 천년, 썩어 천년, 합해서 삼천년을 이어 간다는 주목나무.
천년을 살아 온 주목이 기껏 반백년을 산 나에게 무언가 들려 줄 얘기가 있지 않을까.
‘우리 다음에 만날때는 주목나무처럼 오래오래 같이 살자.
그래서 이번 생애 못 다 이룬 사랑을 꼭 완성해 보자.’
<그때 그 시절을 기억하시나요? : 이팝나무>
하얀 쌀밥 한 그릇 먹으면 원이 없겠다던 시절, 농가 근처에 무리지어 피는 꽃 모양새가
꼭 밥 공기에 수북히 담겨있는 쌀밥을 닮아서 ‘이밥나무’라 불렀던, 하얀 밥 덩어리들이 주렁주렁 매달린 것 같은 꽃이 풍성하게 피면 그해 농사도 풍년이라 했다.
배고팟지만 행복하고 따뜻했던, 누구에게나 돌아가고 싶은,
그리움이 가슴을 적시는 어린시절이 이팝나무에서 생각난다.
<고개 숙인 아버지에게 바칩니다 : 소나무>
‘무엇 떄문에 여태까지 힘들게 살아왔는지 모르겠어.
딴에는 잘 살아 보겠다고 열심히 노력했는데 내 인생이 휴지조각같이 느껴져.
’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열심히 살았던, 굶주린 채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그것을 탓하거나
원망하지 않는 오십대를 사는 이 땅의 아버지들의 하소연을 들으면,
가파른 바위 틈이나 산등성이에 독야청청 푸르게 자리잡고 긴세월의 시련을 견디고 서 있는
태백산 소나무가 생각난다.
당당히 고개를 들고 조금은 허풍을 떨어도 될 자격이 충분히 있다고.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 아까시나무>
이름부터 억울한 아까시나무. 절대 포기할 줄 모르는 질긴 생명력(베어도 계속 줄기가 자라는),
주위에 풀을 자라지 못하게 하거나, 단단한 가시 생성 때문에 구박덩어리지만,
황폐한 산을 푸르게 해 주고 땔감으로 사용했으며 사람들에겐 엄청난 꿀을 제공해 준
아까시나무는 힘이 들어도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산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생은 의미가 있는 것이라는 걸 가르쳐 주고 있다.
<밤새워 연애 편지를 썼었습니다 : 자작나무>
눈이 시릴만큼 하얗게 펼쳐진 설원위에 하얀 수피를 입고 하늘로 곧게 뻗은 자작나무숲
(영화 닥터지바고) 자작나무의 하얀 수피를 조심스럽게 벗겨 내 그 위에 때묻지 않은
연정의 편지를 써서 보내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전설.
<박수 칠 때 떠나라 : 동백나무>
하얀 눈 위에 붉게 떨어진 핏빛자국, 한겨울 설경 위에 다섯 장 꽃잎으로 단아하게 단장한 동백꽃,
그 꽃은 꽃잎 하나 시들지 않은채 꽃송이 그대로 툭 떨어져 생을 마감한다.
한치의 미련없이 그렇게 생을 마감하는 모습에서 절개를 지킨 여인네가 죽어 동백꽃이 되었다는
전설과 왜 순교자에 비유했는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한창 아름다움이 절정에 다다랐을 때 그 모습 그대로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떠나는 뒷모습이 아름다워야 진정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했던가.
<어머니 품이 그립습니다 : 느티나무>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어머니를 만들었다.’
동네 한가운데 우뚝 서있는 거대한 정자나무. 속 뚫린 느티나무를 볼 때마다 인고의 세월,
그 기나긴 애달픔 속에서 자식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고도 더 내어 줄 게 없나 찾는
이 시대의 우리들의 어머니가 생각난다.
<사랑과 상처의 함수관계 : 등나무>
두줄기가 서로 의지하며 저희들끼리 서로 몸을 꼬아 앞서거니 뒤서거니 어울려 자라는 등나무.
하나의 공간에 두 존재가 평생 함께 한다는 것이 불편하기도 할 텐데,
애초부터 한 몸인 양 그렇게 조화로울 수 가 없다.
지나간 인연, 함께 하고 있는 인연, 앞으로 만들어 갈 인연의 소중함을 생각나게 한다.
누군가에게 상처준 적은 없는지.
<밉지만 미워할 수 없는 그대 : 밤나무>
하늘의 햇볕을 독식하며 그 밑에 절대 다른 나무를 키우지 않는.
세상이 모두 제 것 인양 자라는 밤나무를 보면 정나미가 떨어질만도 하다.
어미 성격을 닮은 듯 아무도 건드리지 말라고 안팎으로 두번이나 싸매고도
그것도 모자라 뾰족한 바늘안에 숨어 버린 열매.
그러나 깊은 가을에 멋쩍은 모습으로 군밤 한 봉지를 내놓을 걸 생각하면
찬바람 썡썡도는 겨울거리도 따뜻해진다. 세상 모든나무가 다 같은 모습일 수는 없지 않은가.
<위험한 사랑을 꿈꾸게 하는 나무 : 명자나무>
마치 누군가 봐 주기를 기다린 것처럼 보일 듯 말 듯 숨어서 피는 꽃.
멀쩡한 사람도 홀리게끔 생겨 먹었고 그 열매가 풍기는 향이 사람 마음을 홀린다고
집안에 들이지 말라고 했던 명자나무.아녀자들이 명자꽃 모양새를 보면 바람이 나다나,
아무리 요조숙녀라도 어느샌가 장옷을 꺼내 입고 문밖 출입을 한다는 것이다.
<아무도 그 길을 가라 하지 않았네 : 회양목>
나무 직경이 한뼘정도 되려면 최소한 오백년의 시간이 걸려 느림보라는 별명이 있는 회양목.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긴시간 그 속을 다지고 또 다져 그 어떤 나무와도 비교할 수 없는
단단함으로 결국엔 그 값어치를 단단한 도장으로 쓰이는 나무. 당장은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자기가 가고자 하는 길을 묵묵히 가는 그 모습이 얼마나 위대하고 장한가.
2장 나무가 내게 가르쳐 준 것들
<그 사람의 숨은 그림을 찾아보십시오 : 모과나무>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키고 과일 망신은 모과가 시킨다.’
매끈하고 예쁜 수피에 비해 우스꽝스럽고 못생긴 생김새와 모양에, 좋은 향기에,
못 먹는 대신 차로 끓여 마시는 맛에 세번 놀란다는 모과.
모과나무가 아름다운 이유는 눈으론 절대 찾을 수 없는 숨은 매력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못 생겼어도 사람이 진국인 그런 사람이 그립다.
<좀 바보면 어떻습니까? : 노간주나무>
제코가 석자면서 남 먼저 생각하는 나무, 실제로 절대 나무가 자라지 못할 것 같은 곳에서만
뿌리를 내리는 것이 바로 노간주나무이다.
제 것만 챙기는 사람보단 형편이 어려워도 주변사람 도와주며 허허거리는 사람이 더 정겹고,
겉으론 답답해 보일지라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결국 다시 찾게 되는 건 그런 바보같은 사람이다.
‘좀 바보 같으면 어떻습니까? 좀 손해 보면 어떻습니까? 어차피 더불어 사는 세상 아닙니까?
<첫사랑이 내게 남겨 준 것 : 라일락>
꽃 향기가 뭉쳐 있는 이른 아침에야 비로소 그 본연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나무,
젊은날의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게 되는, 우리가 느끼지 못 했을 뿐 실제 우리가 젊은 시절을
보냈던 곳곳에 피어 있던 라일락나무와 향기.
어디선가 라일락 향이 느껴질 때면 그 아련한 그리움은 한층 더 가슴을 파고든다.
처음이기에 더 애틋하고 가슴 시렸던 나의 ‘첫’사랑.
<받아들이는 용기를 가르쳐 준 나무 : 대나무>
대나무는 단 한번 꽃을 피우고 그 즉시 생을 마감한다.
대나무 꽃은 육십년에서 백이십년 사이에 단 한번 피어나기 때문이다.
대나무에게 있어서 꽃은 아픔이요, 고통이다.
단 한번 개화하는 것도 애달픈데 거기에 목숨마저 내놓아야 하는 삶.
내 남은 삶이 대나무처럼 주어진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고개를 끄덕일 줄 아는 용기있는 모습이기를. 그래서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 ‘한 세상 잘 살고 간다.’고 말할 수 있기를.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었음 좋겠다. : 서어나무>
내게 특별히 뭘 해 준 것도 아닌데 그저 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편해지는 그런 친구가 있다.
곁에 있으면 기분 좋고, 팽팽하게 당겨진 삶의 끈을 느슨히 풀어 주는 존재,
고맙게도 나에겐 그 친구 말고 그런 존재가 바로 서어나무다.
강하고 힘있는 수형이 침체되어 있는 마음을 일시에 일으켜 살아 숨쉬게 만든다.
굵게 뻗은 나무줄기와 싱그러운 연록의 이파리들을 보고 있노라면 살맛이 난다.
나도 누군가에게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좋아서 힘이 나는 존재가 되고 싶다.
다른 이에게 그런 존재가 될 수 있다면 사는 게 더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얻기 위해선 잃어야 할 것도 있는 법 : 은행나무>
은행나무는 오직 일 속, 일 종만 있는 외로운 나무다.
숲을 이루지도 못하고 저희들끼리도 한데 어울려 자라지 못하는 독립수이긴 하지만
사람들에게 은행나무처럼 사랑받는 나무가 별로 없다.
게다가 암. 수가 따로 있어 암꽃은 근처에 있는 수나무에 꽃가루를 날려 보내야 자손을 볼 수 있다.
경우에 따라 평생 자식 한번 못 본채 생을 마감하기도 한다.
천년이고 이천년이고 사람들의 칭송을 받으며 사는 삶은
결국 철저한 외로움을 전제로 얻는게 아니던가.
<사위 사랑이 이러하기를 : 사위질빵>
여름에 산을 오르다 보면 산 초입에 낮은 관목들을 타고 올라가는 칡이나 다래처럼
두껍거나 질기지 않고 연하디 연한 줄기에 흰 꽃을 풍성하게 달고 있는 사위질빵이 있다.
사위에 대한 사랑이 극진한 장모가 다른 일꾼들을 속여 사위 등에 올려진 짐들을
슬쩍 덜어내곤 하여 이를 알아챈 일꾼들이 약하디 약한 사위질빵을 가리키며
‘이걸로 지게 질빵을 만들어도 안 끊어지겠다.’라고 놀려 붙여진 이름. 허
나 줄기가 아무리 잘려 나가도 해를 거듭해 꽃을 피우는 그 생명력이 대견하다.
<씩씩함에 대하여 : 개나리>
개나리처럼 우리나라에 범국민적(?)으로 피어나는 꽃도 없다.
매해 봄 일찍 어김없이 공해에 찌든 서울 한복판에서도 바위산에서도 노란 건강한 꽃을
보이는 것은 개나리의 타고난 씩씩함과 생명력 때문에 더 정이 간다.
<더불어 산다는 것의 의미를 꺠우쳐 준 나무 : 전나무>
전나무의 가장 큰 특징은 ‘곧음’에 있다. 주변 환경이 어떻든 절대 굽어 자라지 않고
위로만 뻗어 자라면서도 절대 흔들리거나 부러지는 예가 없다. 왜 그럴까?
그것은 저희끼리 적당한 간격을 두고 무리를 이뤄 각종 풍상을 이겨내기 때문이다.
강직하게 외대로 자라지만 더불어 살아갈 줄 아는 전나무의 모습은 제 스스로를 더 굵고
강하게 만드는 바탕이 된다. 누군가 곧은 삶은 외로운 법이라고, 혼자 가야 하는 길이라고 했다.
그러나 곧은 삶일수록 더불어, 남의 말에 귀 기울이며 함께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신의 행복도 멀리 있지 않습니다 : 자귀나무>
자귀나무는 밤이 되면 외롭게 홀로 남는 잎이 없이 잎들마다 서로 맞닿을 짝이 있어
양쪽으로 마주 난 잎을 포개고 잠을 잔다. 낮 동안 서로 떨어져 있다가 해가 지기 무섭게
제 짝을 찾아 정답게 마주하는 잎의 생리가 귀엽고 예쁘다.
자귀나무를 마당에 심으면 부부의 금슬이 좋아져 이별을 막는다는 얘기도 있다.
<국회의사당에 심고 싶은 나무 : 회화나무>
압구정동 로데오거리 양 길가에 길게 늘어서 있는 회화나무.
나이 지긋한 선비가 신세대 취향의 커피숍에 어정쩡하게 앉아 있는 것 같다.
‘바람도 품에 안는 장엄한 포용으로 풍성한 그늘을 내리는 나무’ 충절을 지키는 공신,
선비의 풍모, 워낙 정갈하고 대쪽 같은 성격 탓에 잡귀신은 감히 다가서지 못하고
대신(大神)만이 쉬어 간다는 나무.
마당에 심으면 큰 인물이 나온다는 회화나무가 우리나라 국회의사당 마당에는 없다.
3장 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
<사랑한다면 ‘연리지’처럼>
두나무의 뿌리가 이어지면 연리근(連理根), 서로의 줄기가 이어지면 연리목(連理木),
두나무의 가지가 서로 이어지면 연리지(連理枝)라고 일컫는다.
연리지는 종국에 맞닿은 자리가 붙어 한 나무로 변한다.
나무란 놈은 참 현명해서 서로 붙어 한 몸이 되면 혼자였을 때보다 훨씬 더 거대한 나무로 자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쳐지기 전의 성격과 기질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서로 다른 특성을 지녔으면서도 일단 한 몸이 되면 서로의 개성을 인정하고 조화롭게 사는 모습에
절로 탄성이 나온다. 연리지 된 나무가 더 크게 자라는 것은 제 색깔을 유지하면서도,
한발자욱씩 물러서서 한 몸을 이룰 줄 알기 떄문이다.
서로 근본이 다른 둘이 만나서 한 몸을 이루는 것이 결혼이라면 ‘사랑은 연리지처럼 해야지…’
<기다림의 미학>
‘한번 자생력을 갖춘 나무는 누가 와서 억지로 베어내지 않는 한 절대 병들어 죽지 않소.
다만 그렇게 되기까지 많이 기다려야 하는 게 문제지. ’나무를 키우는 일이 끊임없는
기다림의 과정이며, 그 안에서 스스로 여유를 찾아야만 가능한 일이다.
더구나 시간적, 물질적인 기다림이 아닌,
마음이 더해지고 정신적인 노력이 들어가지 않는 기다림은 의미가 없다.
<죽음을 받아 들이는 태도>
제 수명을 다하면 조용히 삶을 마감하고 흙으로 돌아가는 나무들.
볼품없던 나무도, 크고 장대한 수형을 자랑하던 나무도 죽으면 똑같이 흙으로 돌아간다.
새순을 올려 이제 막 삶을 시작하려는 나무들에게 기꺼이 자기 자리를 내주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앞으로 남은 시간이 살아온 세월보다 짧다는 걸
느끼는 순간부터 삶에 대한 미련이 많아졌다.
늙고 병든 나무를 대할 때 ‘이런 나무를 치료하는 게 과연 잘 하는 일일까.’
가지 하나에서 ‘이제 그만 가게 놔줘.’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일년이 지난 뒤 늙고 병든 나무가 자취를 감춘 그 자리에는 어린 잣나무가 한 참 자라고 있었다.
‘노동력이 없어지면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 결국 죽음이란 끝인 동시에 또 다른 시작인 것이다.
자연의 품안으로 돌아가 다른 형태의 삶을 시작하는….
아마도 어린 잣나무가 자라는 그 어딘가에는 흙으로 돌아간 늙은 잣나무의 양분이 숨어 있으리라.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사람들은 말한다. 사람 사이에 느껴지는 거리가 싫다고.
하지만 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적당한 간격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에게는 저마다 오로지 혼자 가꾸어야 할 자기 세계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떨어져 있어서 빈 채로 있는 그 여백으로 인해 서로 애틋하게 그리워할 수 있게 된다.
구속하듯 구속하지 않는 것 그것을 위해 서로를 그리워할 정도의 간격을 유지하는 일은
정말 사랑하는 사이일수록 꼭 필요하다.
너무 가까이 다가가서 상처주지 않는 그러면서도 서로의 존재를 늘 느끼고 바라볼 수 있는
그 정도의 간격을 유지하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나는 나무들이 올 곧게 잘 자라는 데 필요한 이 간격을 "그리움의 간격" 이라고 부른다.
서로의 체온을 느끼고 바라볼 수는 있지만 절대 간섭하거나 구속할 수 없는 거리.
그래서 서로 그리워할 수 밖에 없는 거리…
<삶에도 휴식이 필요하다.>
나무를 표현함에 있어 흔히 정중동(靜中動)이라는 말을 쓴다.
겉으로는 아무것도 안하고 그저 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무는 세상 그 누구보다 바쁘게 쉼 없이 움직인다.
일년내내 열심히 살면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으로 한 해를 마무리한다.
그 모든 삶이 오로지 꽃과 열매에 초점을 두고 있다.
그러나 어느 해가 되면 갑자기 열매 맺기를 포기해 버리는 경우가 있다.
여러 해에 걸쳐 열매 맺는데에만 온 힘을 다 쏟으면 나무안의 자생력은 사라지고
점차 기력을 다하게 되어 어느 순간 한계치에 달했을 때 그 나무는 그 해를 넘기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나무는 해거리를 통해 한 해 동안 열매 맺기를 과감히 포기해 버린다.
그 어떤 생산 활동도 하지 않고 해거리를 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 휴식때문이다.
휴식이 끝난 다음 해에 나무는 어느 때보다 풍성하고 실한 열매를 맺는다.
떄가 되면 모든걸 접고 과감하게 휴식을 취할 줄 아는 나무가 세상에서 가장 진화한 존재라고.
한번 조용히 눈을 감고 자신에게 물어 보자.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게 무엇인지….
일을 배우고 익히듯, 쉬는 것도 배우고 익힐 노릇이다.
휴식은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하고서라도 얻어야 할 삶의 중요한 자양분임을
나무는 오늘도 내게 조용히 가르쳐 준다.
<버려야만 더 큰 것을 얻는다.>
나무란 놈이 그렇다. 이른 봄부터 여름까지 나무는 정성 들여 새순을 올리고 잎을 만들어 낸다.
한여름의 나무를 보면 그간의 노력을 단박에 알 수 있다.
위에서 내려다 보면 겹치는 부분 하나 없이 모든 이파리들이 정교하게 제 위치를 찾아
그 본연의 녹색 빛을 뽐내고 있다.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사람도 견디기 힘들지만,
나무는 더더욱 그렇다. 가을에는 햇볕이 여름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고,
뿌리를 통해 공급 받는 수분의 양도 절반 이하로 줄어든다.
그러므로 다음 해를 기약하기 위해선 그동안 모아 놓은 에너지를 아주 조금씩만 쓰면서
추운 겨울을 견뎌 내야만 한다. 그렇기 위해서는 그나마 남아 있는 수분을 증산시키는
잎들을 모질게 떨어뜨리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
다시 말해 나무가 잎을 떨구는 것은 추운 겨울을 이겨 내고 다시 새롭게 봄을 맞이하기 위해서다.
그 결과물이 바로 늦가을 우리 눈에 보이는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낙엽들이다.
연인들은 낙엽이 쌓인 길 위에서 사랑을 속삭이고, 어린 아이들은 그 위를 뒹굴며 까르르
웃어 대지만 사실 나무에게 낙엽은 안타까운 포기 후에 흘리는 눈물과 같다.
나무는 그렇게 제 살을 깍아 내는 고통을 감내하면서도 잎들에 대한 미련을 두지 않는다.
아무런 회의 없이 과감히 잎들을 내친다. 그들은 알고 있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새롭게 다시 태어날 수 있는 봄이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잘 것 없는 나무들이 아름다운 이유>
숲이 생길 떄 가장 중심부에서 그 틀을 잡아주는 관목들은 어느 정도 숲이 완성되면
키 큰 나무들에게 자리를 내주고 ‘여가리’, 즉 숲의 주변부로 밀려난다.
이 볼품없는 관목들이 외부의 자연적인 재해에 맞서며 숲 전체를 지켜 나가는 것이다.
이로 인해 숲은 보다 다양한 종이 어우러져 건강한 모습을 이뤄 나간다.
아무런 생명도 없던 메마른 땅에 평상시에 외면만 당하던 풀들이 들어와 개척자 역할을 한다.
불모지에 가장 먼저 들어와 지반을 안정시키고 다른 마무들이 살아갈 윤택한 토양을 만든다.
바로 개척식물이다.
초석을 다진후 다른 나무들이 하나 둘 자리 잡으면 관목들이 그랬듯 조용히 자기 자리를 내준다.
누군가 알아 주지도 않지만 묵묵히 맡은 바 소임을 다 해낸다.
나무들은 자기 자리에서 행복을 찾는 방법을 너무도 잘 터득하고 있다.
남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자기의 삶 하나만을 두고 거기에만 충실한다.
그리고 그로 인해 생의 의미를 얻고 삶을 영위할 힘을 받는다.
‘못 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 는 말은 비단 나무 사회에서만 통용되는 말은 아닐 것이다.
내 삶에 점수를 매길 수 있는 사람은 나 자신뿐이라는 것을 늘 기억하며 살아 갈 것이다.
<내 남은 삶들은>
갈수록 망가져 가는 숲과 갈수록 숲과 나무에게서 멀어지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나는 참 외롭다.
계획없는 벌목과 방치로 자생력을 잃어버릴 정도로 망가진 우리나라의 숲들,
너무나 아프다고 살려 달라고 애원하는 나무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내가 나무라면 가장 가고 싶지 않은 곳이 사람곁이다.’
나무는 원래 생존력이 높다. 하지만 그런 나무도 자살을 꿈꿀 때가 있다.
지구상에 자취를 찾을 수 없는 아메리카 인디언 체로키족의 추장, ‘구르는 천둥’은 이렇게 말했다.
‘지구는 살아 있는 하나의 생명체다.
지구는 인간과 마찬가지로 그 자체의 의지를 가진, 보다 높은 차원의 인격체다.
따라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건강할 때가 있고 병들 때가 있다.
사람들이 자신의 몸을 소중하게 여기듯이 지구도 마찬가지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지구에 상처를 주는 것은 곧 자기 자신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며,
자기 자신에게 상처를 가 하는 것은 곧 지구에게 상처를 가하는 일이라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다.
’ 프랑스 작가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는 사람’에서와 같이
한 사람의 작은 삶이 모두에게 희망을 불러 일으켰듯이
나도 숲을 가꾸며 내 뜻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그들 중 뜻을 함께 하는 젊은이들에게 내가 못 다할
‘건강한 숲 만들기’를 이어가게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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