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잊고 지낸게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꼬옥 1년이 지났지만,
문득 생각이 나고, 보고 싶을 때가 있긴 했지만, 그렇게 지나갔다.
아버지의 빈자리....
관련된 여러가지 소설에서 읽은 것 처럼, 드라마에서 본 것처럼 큰 것일까?
나만 그런 것일까? 좀 더 세월이 지나야 그 빈자리가 크다는 걸 알게 되는 걸까?
아무리 그래도 어머님 만큼 크지는 않을 것이다.
아직까지 한번도 남편의 빈자리를 말씀하지 않으시는 어머님을 보고 있노라면...
그래...어머님은 그 빈자리를 비었다고 생각하지 않으시는지도 몰라.
경부고속도로를 들어서면서 조금씩 내리던 비가 기흥를 지나면서 폭우로 변하기 시작하더니
망향을 지날떈 집중호우에 앞이 보이질 않을 정도로 쏟아 부었다.
천안공원묘원을 들어서니 조금은 잦아들긴 했으나 만만치 않은 빗줄기다.
자주 찾아오지 않았다고 화를 내시는 걸까?
미리 부탁한 천막이 쳐져 있어서 20여명이 그나마 비를 피할 수는 있겠다.
'저희는 1년이 금방 지난것 같은데, 그동안 어떠셨어요.'
아버님이 안 계시니깐 편안했느냐구요?
'예, 집안이 조용하고 평안하고 아주 좋아요. 좀 심심해서 탈이지만요.'
예? 저희들끼리 잘 살라구요.
'예, 걱정마세요. 그렇지 않아도 잘 살고 있어요. 아버지가 걱정이지요.'
걱정하지 말라구요.
'예, 이젠 걱정하지 않을께요. 그러니 아버지도 마음 편히 가지세요.'
이젠 다 잘 됐으니깐, 그만 가 보라구요.
'예, 그리할께요. 평생을 아버지 말씀대로 했잖아요.'
'아버지도 이젠 모든 것 내려 놓으셨으니 편안하실 거예요. 걱정마세요. 또 들를께요.'
집으로 돌아간 사람은 없었다고 합니다.(2010.8.4) http://blog.joinsmsn.com/psb1026/11731300
지난 28일 저녁 7시20분 아버지께서 결국 집으로 돌아오시지를 못하시고
당신께서 원하시던 머언 하늘나라로 떠나셨습니다.
가시는 순간까지 가족들 고생시키지 않으시려고 무척이나 애를 쓰신 아버지, 감사합니다.
아버지께선 평소에 당신 壽를 아셨는지 望百(91)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 하셨는데
卒壽(90)에 하느님께로 가셨습니다.
당시의 부모님들이 대부분 그러했듯이 아버지도 의식주 해결과
댓가없는 아들농사에 온 힘을 다 바쳐 고생만 하셨던 분이었습니다.
넉넉치 못한 집안사정으로 중학교를 다 마치시질 못하고 일본으로 밀항하여
배우신 목수일이 평생의 직업이 되었습니다.
결혼초기엔 돈도 많이 벌었다는데 여순사건과 6.25전쟁으로 인해 연이은 화재로
빈털터리가 되었고, 5.16 나던 해 아버지께서 서울행을 하시게 된 것은
먹고 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겁니다.
저는 다음 해, 3학년때 아현동 산 7번지 달동네에서 서울아해가 되었습니다.
그리곤 학창시절, 제가 군대 제대할 때까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습니다.
새벽에 나갔다, 밤 늦게 들어 오시는 아버지와 마주할 기회가 거의 없었기 때문일겁니다.
사실 저는 아버지와 진지한 대화를 나누어 본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저와 아버지는 참 많은 면에서 달랐습니다.
특히 저와는 전혀 달리 머리는 정말 영리하신 분 이었습니다.
제가 아버지의 총명함을 알게 된 것도 은행 입행한 다음부터 입니다.
자의든 타의든 그만큼 아버지와 저는 거리가 먼 관계였습니다.
부모님이 학교에 오신것은 고등학교 졸업식때가 유일했습니다.
중학교 졸업식땐 누나만 왔드랬습니다.
그래서 저에겐 중학교 졸업사진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부모님을 원망해 본 적은 진정코 없습니다.
여태껏 부모님 모시고 잘 살아 왔습니다.
아버지께서는 환갑 가까이 되어서 잠실에 내아파트 마련의 꿈을 이루시더니
중노동에 가까운 직업 성격상 실질적인 은퇴상태가 되어 버린 것 입니다.
이제는 제가 아버지를 알 수 있는 시간이 많아 지긴 했지만,
직장 다닌다고 맨날 밤 늦게 들어오니 제 쪽에서 시간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아버지와 57년간 함께 살아오면서 집안일에 관한한 제 의지대로 살아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이제 좀 제 마음대로 살아보려 했더니 ...
그게 그리도 보기 싫으셨던 모양입니다.
한해 정도는 아들이 어떻게 지 마음대로 사는지도 보고 가셔도 될텐데 말입니다.
喜壽까지 큰 걱정거리없으시던 아버지께서 만성 신부전증으로 매년 입.퇴원을
반복하시면서도 큰 고생은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위장이 워낙 튼튼해서 식성이 아주 좋으셨거든요.
연세가 있으셔서 그런지 작년말 어머니의 고관절 수술이후 아버지의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식욕도 감소하더니 한달전부터는 하루 20시간이상 거의 혼수 상태가 되었드랬습니다.
결국 요양원에 모신지 여드레만에 하느님께로 가셨습니다.
'이곳에서도 집으로 돌아간 사람은 있는게냐?" 요양원에서의 마지막 말씀이셨습니다.
"아니오, 아버지!! 없다고 합니다." 결국 저는 이 말씀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저희 아버지께서는 법 없어도 사시는 분이시니 천국에 계실 겁니다.
"아버지, 마지막이자 처음으로 부탁 하나 합시다."
"어머니 보고 싶다고 얼른 부르시면 절대 안됩니다."
이승에서 못 다하신 쉼 천국에서 마음껏 누리시길 기도합니다.
부디 편히 쉬소서.
고 둘째 아들
여기에서도 집으로 돌아간 사람은 있는게냐? (2010.7.19)
http://blog.joinsmsn.com/psb1026/11699808
아버지, 이젠 마무리하셔야지요. (2010.7.9) http://blog.joinsmsn.com/psb1026/11680470
맛있는 냄새가 난다. (2010.4.29) http://blog.joinsmsn.com/psb1026/11532501
재회의 눈물 (2010.2.17) http://blog.joinsmsn.com/psb1026/11375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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