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 나라에서도 가끔 하느님의 셈법이 필요하다'
박용성 (여수고등학교 교사)
그 애가 왔다. 자기가 죽어야 이 문제가 끝날 것 같다며, 내 앞에서 울부짖던, 그 아이가 날 찾아왔다. 이게 몇 년 만인가. 간간이 풍문처럼 소식은 들었지만, 바람에 떠도는 소문이 얼마나 가벼운가를 아는 바, 마음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수가 없었는데, 그 아이가 나를 찾아왔다.
처음 만났을 때 그 애는 침울했고, 말이 없었다. 그 나이 또래 소녀들이 으레 그러려니 여기고, 말았다. 신학기라서 정신없이 며칠을 보내며, 까맣게 잊어 버렸다. 그러고 있는데, 그 애 어머니한테서 연락이 왔다. 잠시 말문을 열지 못하다가, 어머니는 울먹였고, 들려준 사연은 비정했다.
슬리퍼가 없어졌단다. 누가 가져갔거니 하고 그냥 새로 사려는데, 한 아이가 와서 슬리퍼를 사라고 내밀더란다. 그게 아무리 봐도 자기가 잃어버린 것인데, 자기 이름이 적힌 자국도 시퍼렇게 남아 있는데, 그걸 다시 사라니, 환장할 일이었단다. 그래도 샀단다. 그냥 피하고 싶어서.
늘 이런 식으로 아이는 짓이겨지고 있었다, 그것도 무려 삼 년씩이나. 중학교 때 같은 학원에 다녔는데, 사내 중에 훈남이 있었나 보다. 다들 마음에 두고 있는데, 어느 날 이 아이가 그 녀석을 보고 웃었단다. 그 모습을 어떤 아이가 지나가다 봤단다. 그러고서, 지가 감히 누굴, 하고 내내 씹었단다.
관련되는 아이들을 불러다가 사실을 조사하면서, 이건 아니란 생각이 정말 들었다. 아무도 아이와 밥을 먹으려고 하지 않았고, 아무도 말을 건네려고 하지 않았다. 교련 시간에 압박 붕대 감는 실습을 하는데, 아무도 짝이 되어 주지 않으려고 할 정도였다. 아이를 따돌리는 카르텔은 생각보다 견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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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기가 막힌 건, 그렇게 따돌리는 아이가, 수요일마다 예배를 드린다며 야자를 빠진다는 사실이었다.
가서 무슨 기도를 하느냐고 물었더니, 이것저것요, 아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아니하고, 애곡을 하여도 울지 않는 ‘공감 제로’의 모습이 거기 있었다.
처음에는 그런 아이들을 달랬다. 달래고 달랬다. 하지만 늘 쳇바퀴를 돌 뿐, 더 큰 상처를 그 아이에게 안겨 주곤 했다. 아이는 늘 죽음을 이야기했다. 이건 방법이 아니구나, 용서도 때로는 재앙이 되는구나, 비싼 수업료를 치르고 나는 깨달았다. 그러다 큰소리를 냈고, 결국 선택을 했다.
내가 능력이 부쳐, 너희 모두를 보살피지 못함을 용납하라. 이제 난 너희를 떠나 한 아이에게 가겠다. 가서, 그 아이와 함께 길을 헤매겠다. 그러다, 그 아이에게 이리 노릇을 하는 녀석이 있으면 나도 똑같이 이리가 되어 주겠다. 그렇게 경고하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난 그때 죽음이 너무 두려웠다.
그렇게 지냈던 아이가 오렌지주스를 사 들고 찾아왔다. 얼굴은 평화로웠고, 말씨는 부드러웠다. 고요해 보인다고 했더니, 샘 앞에 오니 그리 되었겠지요 하며 웃었다.
아이는 사회복지사를 꿈꾸고 있었고, 이제는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고 싶다고 했다. 그 아이가, 기적처럼 가볍게, 내 앞에 나타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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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표가 100원이라면, 자동 발매기에다가 99원을 아무리 넣어 보라, 표가 나오는지.
1원을 채워야 비로소 표 한 장이 덜컥 나온다.
1이 없으면 나머지 99도 의미를 잃는 법. 사람 나라에서도 가끔 ‘하느님의 셈법’이 필요하다.
- ‘사람 나라에서도 가끔 하느님의 셈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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