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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야기

2010년 6월 가족이야기(이게 마지막 투표였으면 좋겠다)

by 단계와 넓은여울 2013. 8. 30.

으휴, 이게 마지막 투표였으면 좋겠다.

http://blog.joins.com/media/folderListSlide.asp?uid=psb1026&folder=9&list_id=11607623

 2010-06-04 09:49:00

우리집은 투표권이 6명이다.
어머니께서는 걸음걸이가 많이 불편하지만 퇴원후 꽤 호전되어 성당도
모셔다 드리면 오실때는 친구분들과 천천히 걸어 오실만하다.
예전같이 매주 3번을 가실수는 없지만 주일이라도 내가 모시고 갈수
있는 것만도 정말 하느님의 크나큰 은총이라 여기고 있다.
거동이 아주 불편한 아버지를 제외하고 투표를 하러 가기로 했다.
 
문제는 투표절차가 여든넷 어머니께는 매우 복잡하다는 것이다.
"할머니, 누구 찍어야 되는지 아세요?" 둘째의 질문.
"그래, 애비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되지 뭐."
"누군지 알지도 못하면서 무슨 투표한다고 그래!!!!!" 아버님의 핀잔.
"당신이나 집에 있구랴. 얼른 하고 오자." 재촉하시는 어머니.
"두번 투표하는데, 처음 네장을 받으면 첫번째장은 ㅇ번째 찍으시고
제 중학교 동창이예요. 2,3학년때 같은반이었어요.
두째장은 ㅇ번째, 글구 나머지는 모두 ㅇ번째 찍으시면 되요." 
"아셨어요." 나의 몇번째 하는 다짐.
"그래 알아." 그리 미덥지 않는 어머니의 대답.
 
자동차를 타고 가면서, "첫번째장은 몇번째요?", "으응, 일곱번째..."
" 첫번째는 ㅇ씨를 찍으세요. 두번째장은 ㅇ씨를 찍고요.
나머지는 몇번째라 했지요?", "두번째." "예 됐어요."
투표장에 도착하니 줄이 꽤 있다. 이번엔 투표율이 좀 올라갈 모양이다.
 
어머니를 앞세우고 본인 확인 절차를 끝내고,
어머니께서 투표용지를 받아 가시는데,
아뿔사, 투표용지 순서가 꺼꾸로 되어있는 게 아닌가.
이미 커튼안으로 들어가고 계시는데 불러 세울수도 없고...
난 1차 투표를 끝내고 나왔는데 어머니는 나오실 기미가 없다.
둘째애도 2차 투표까지 마쳤는데도 아직도 투표소안에 계신다.
틀림없이 투표용지 순서때문에 헷갈리신게 분명하다.
 
한참만에 커튼을 들치고 나오시는 어머니.
한손에 두장, 다른손에 두장을 들고 계신다.
" 모두 이곳에 넣으세요." , 참관인의 도움.
"잠깐만, 이쪽 두장은 아직 안하셨네. 마저하고 오세요."
두리번거리시는 어머니의 표정엔 당황스런 표정이 역력하다. 
또 다시 한참만에야 나오시는 어머니.
교육감, 교육위원은 간신히 찾아 어찌어찌 마치고,
나머지 중에서 한장의 두번째칸이 '1-나'로 되어 있어서 그냥 나오셨는데,
그 두장을 다시 하고 오라고 하니 어찌해야 될지를 모르셨던게 분명하다.
나의 실수다.
2차 투표는 수월하게 완료.
 
새침한 표정의 어머니. 사실 우리 어머니는 이럴때가 제일 이쁘다.
"투표용지 순서가 바뀌어 헷갈리셨지요?", 정말 부드러운 나의 목소리.
"제대로 찍으셨어요?"
"으응, 시킨대로 다 알아서 했어." 찬바람이 이는 목소리 톤.
"할머니, 아빠 얘기대로 다 했어요?"
"그래, 내가 알아서 다 했다." 더 이상 얘기하고 싶지 않다는 말씀.

"으휴, 뭐가 그리 복잡한지... 이게 마지막 투표였으면 좋겠다."
그리고선 하루종일내내 아무 말씀도 하질 않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