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봄.여름 통권제37호(한국숲해설가협회 반연간 협회지)
2013년 게으른산행을 뒤돌아 보며
이 산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향한다고, 낱낱이 밝혀 적는 것이 무어 그리 중요하랴.
맑은 숨 쉬어 보고 천년씩 한 자리에 살면서도,
의연한 그 분을 만나 한 번 우러름이 오늘의 산일(山事) 인것을. 2013년 1월 9일 첫 산행인 운길산을 다녀오고 게으른산행 카페(cafe.daum.net/dajungkeum)에 올려진 첫 기록입니다.
2011년부터 시작한 게으른산행이 어언 3년의 역사를 지니게 되었고 80여명이 넘는 숲해설가 회원들이 36개 이상의 산을 답사하였습니다. 협회에서 주관하는 많은 프로그램과 강의, 이벤트들이 있지만 게으른산행은 조금 독특한 프로그램입니다. 바로 '산행'을 한다는 것이지요.
산행을 하면서 우리가 마주치는 자연이 만들어낸 모든 것들, 나무, 풀, 지의류, 버섯, 곤충, 조류, 흙, 바람, 햇빛, 구름 등 뿐만 아니라 인간이 만든 조형물도 게으른산행의 대상입니다.
게으른 산행이란 해가 중천에 뜰 무렵 일어나서 하는 산행이 아니라 새벽에 밥 지어 먹고 산에 들어서서 맑은 공기 마시며 자연의 친구들과 넉넉한 시간을 보내는 행위입니다. 사계절 변하는 모습을 관찰하고 내 맘에 맞는 나무가 있으면 그 밑에서 말도 걸어보며 천천히 걷는 산행입니다.
정상을 밟으려는 욕심을 버리고 목적지가 따로 없이 숲을 하나하나 알아가는 자유로운 산행입니다. 우종영선생님의 게으른 산행에 대한 지론입니다.
‘놀멍 쉬멍 배우는 재미를 느낍니다. 숲이 주는 넉넉함과 우종영선생님의 담백한 목소리가 자연의 노래가 됩니다. 한 달에 한번 숲이 주는 지혜의 샘물을 담아 나눔이 되는 숲 해설가를 지향합니다.’ 2011년 게으른 산행을 시작하는 사업취지 및 목적입니다.
이후 게으른산행은 협회의 주관하에 진행된 심화강좌 ‘게으른 산행’을 발전시켜, 산행모임을 조직하여 외부 강사를 초빙하거나 자체 인력을 중심으로 탐방지역의 식생과 동물을 포함한 생태계와 문화를 연구하며, 현장 Study를 통한 전문인력을 양성할 뿐만 아니라 협회 연구조직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며, 장기적으로는 숲문화 관련 각종 분야의 연구를 실시하며 이를 토대로 서적 발간, 각종 수익사업과 사회공헌 사업을 추진하는 것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작년에는 1월부터 운길산, 청평사, 두륜산(1박), 백운산, 일름산(1박), 주흘산, 조계산(1박), 용문사, 서운산, 소요산, 제주도(3박), 마니산을 다녀 왔습니다.
운길산 정상에서 소나무의 의연한 기상을 보며 2013년 첫 게으른산행을 시작하였습니다. 오봉산 청룡사 여러 모습의 연리목들을 동정하며 그저 바라만 보고 있는 나무, 가만히 속삭이는 나무, 입술만 대고 있는 나무, 허리를 껴안고 있는 나무, 가슴을 부비고 있는 나무, 아랫도리에 집중하는 나무, 온몸으로 표현하는 나무, 손까지 사용하고 있는 나무, 한곳으로는 모자라 상.중.하를 모두 탐하는 나무, 손만 잡고 그냥 잠만 자는 나무, 글구 사랑조차 귀찮은 나무 등 그들과의 대화는 끝이 없었습니다.
숲 속의 이야기꾼이 계시어 함께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보겠습니다. 이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녀석(이나무)과 가시가 촘촘히 나 있는 친구(머귀나무)랑 피부가 메론껍질 닮은 애들(예덕나무)도 있어, 얼굴에 하얀 분칠(사람주나무)을 해 가며, 어린나무를 보듬어 주는 친구(너도밤나무)와 너도 밤이냐고 서로 싸우기도 하고, 두 팔 벌리고 하늘 우러러 서로 힘을 합해 살아보자고 엄마, 아빠의 보호(느티나무 연리목) 를 받으며 살고 있지만, 언제 두 집 살림(버드나무의 분리) 할지 모르는 불안 속에, 애초에 터를 잘못 잡아(바위위 느티나무) 이 고생을 하면서 누구를 탓하랴? 사랑과 목생(木生)의 처절함과 마음대로 안 되는 삶의 상처(서어나무 연리지의 분리)를 안고서, 물구나무를 서 봐도(줄기와 가지의 생존법칙), 포크레인으로 흙을 파내고, 무자비한 사람들에 의해 잘려나가도(임도 확장공사), 거대한 바위와 싸우느라(바위와 사람주나무), 힘들어 혀가 삐져 나오고(서어나무 줄기), X똥도 싸 가면 버텨보건만(굴참나무 밑둥), 오랜 세월에 내장이 터지고(진불암 붉가시 줄기), 온 몸이 팽 뒤틀리기를 해도(덩굴나무에 감싸인 팽나무), 옆집에서 한 방울 물로 몸을 추스리면(느티나무 연리목). 서어 있어도 근육이 울퉁불퉁 생기고(서어나무), 힘이 발딱 솟구쳐 올라(붉가시 맹아지), 아랫도리로 버티고 서서(서어나무 판근), 바위 정도는 가뿐히 다스리긴 했어도(바위사이 사람주나무), 태풍 부는 날 흙을 움켜 쥐어도 봤으나, 맥을 출 수 가 없어, 모두 떠나가 버린 텅 빈자리(임도 확장공사로 뿌리가 들어난 나무들)엔 토끼가 한 마리 비웃고 있었다네(와우각상 가지). 왕벚꽃 자생지를 둘러싼 철제 울타리를, 가위로 잘라냈으면 좋겠다 생각하며, 풀피리 한 곡조 하니, 산속 물범(머귀나무 겨울눈)도 빙그레 웃고 게으른산행 식구들의 안전을 두 손 모아 기도(줄기 속이 썩어가는 느티나무)해 주는 천년 느티 노거수가 계시어 우린 행복한 단잠(돌아오는 버스안)에 빠질 수 있었습니다. 두륜산에서는 와우각상(蝸牛角上) 모습의 느티나무를 만나 우리는 인생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는 계기가 되었답니다. '달팽이 더듬이 위에서 무엇을 다투는가, 부싯돌 불빛 같은 짧은 인생이거늘. 부 해도 가난해도 이 또한 기쁨인 것을, 입 크게 벌려 하하 웃지 않으면 그대는 바~~보.'
몇 년전까지 살아 있었던 백운산 히어리의 행방불명에 안타까워 했고, 철쭉꽃이 만발한 고향 일림산에 초대해 주신 고마운 게산 식구에 이곳에서 감사드립니다., 낙안읍성, 순천만과 곱향나무를 보러 송광사와 선암사를 오롯이 한꺼번에 섭렵하였고, 한 여름 계곡에서의 발이 시린 주흘산과 용문산에서의 족탕, 서운산 청룡사 대웅전의 그랭이기법 느티나무 기둥들에 감탄하였고, 3박4일 제주도 게을느산행은 영실계곡과 돈내코, 샤러니숲길과 절물휴양림, 거문오름 등 남부식생과 아름다운 탐라국을 만끽하였습니다, 마니산에서 단군할아버지의 정기를 받고 2013년 게으른산행을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모든 나무들의 이름과 특성을 다 알려고 하지 말자. 나무들이 나에게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다가오는가? 나에게 다가오는 나무만 공부를 해도 충분하다. 나무는 그 의미를 모르는 사람에겐 절대 다가가지 않는다. 우리는 숲에 자연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기위해 게으른산행을 합니다.
‘사람들 곁에는 나무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도시가 들어서면서 어느 순간 우리는 우리에게 녹색 빛 여유로움을 주던 나무들을 잊어 가며 살고 잇습니다. 오래 전에 잃어버린 친구를 다시 만난 기쁨으로 우리주변의 나무와 친구하면서 또한 나무가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삶의 지혜를 얻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돌아가신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써 주신 ‘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 의 추천사입니다.
우리는 게으른산행을 통해서 하나의 소통의 장을 찾았으면 합니다.
매월 다른 산을 찾았고, 그 속에서 수많은 자연을 만났고, 계절을 보았고,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눈덮힌 산으로 시작해서 꽃속을, 숲속을, 빗속을, 구름위를, 바위사이를 걷고 미끄러지고 했고 그리고 우린 또 다시 새하얀 눈 덮인 산을 찾았습니다. 웃기도, 울기도 했고, 감탄도 했고, 놀라워하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만난 모두를 사랑했다는 분명한 사실이었습니다. 사랑하는 대상이 같다는 것만으로 우리 게으른산행 식구들은 행복할 충분한 조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당장 무언가 얻으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언젠가 그것이 생활화가 되면 우리
몸 속에서 밑거름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게으른 산행 속에서 그렇게 내 삶의 가치를 찾아가고자 합니다.
2014년에도 게으른산행은 쭈~~욱 계속됩니다. 게산따 ~읏~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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