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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폴더

여보, 다녀 옵니다.

by 단계와 넓은여울 2015. 3. 20.

결혼 전에 내가 꿈꿔 온 결혼생활은 이랬다.

아내는 집에서 살림을 하고 나를 기다리며, 나는 출근을 하며 돈을 벌어 오는 것이었다.

아침에 아내의 배웅을 받으며 출근하고 저녁에는 퇴근하여 아내의 반가운 마중을 받는

그런 낭만적인 그림 말이다.

상상속의 그림은 출퇴근하는 나에게 뽀뽀라도 해주면 더 없는 행복감을 느끼는 부부의 그림이었다.

그러나 돈이 웬수가 되어 맞벌이를 계속 하게 되고, 애를 낳고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그러한 달콤한 꿈은 그냥 꿈으로 머물게 되었다.

함께 출근하는게 일상화되었고 (부모님께) '다녀오겠습니다.'만 남게 되었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살아오는데 불만이 있었다는 건 결코 아니다.

 

32년을 우리 사이에 출근길 인삿말은 부모님께 드리는 인삿말로 대신되는 그렇게 살아 왔던 것이다.

존댓말로 시작된 첫만남부터 35년을 존댓말을 쓰며 살아 왔다.

그래서 그런지 우린 별로 싸울 일이 없었다.

존댓말로는 결코 언성이 높아질 수가 없었던 거였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결혼하면서 한 일중 가장 잘한 결정이었다고 자부하고 있다.

그래서 큰딸 부부에게도 꼬옥 당부한 게 서로 존댓말 쓰는 거와 각 방 쓰지 말라는 거였다.

 

작년 6개월 간격으로 퇴직하고 함께 백수생활을 하며 잊어졌던 그 꿈에 그리던 출근길 인사가

요즘 새삼스럽게 나를 설레게 한다.

어머니께서 왼쪽 고관절 수술로 병원에 입원해 계시기 떄문에 요즘 집엔 집사람만 있게 된 것이다.

이번 달부터 내가 출근할 일이 생기다 보니 자연스럽게 '여보, 다녀 옵니다.' ㅎ ㅎ ㅎ

괜스레 설레는 출근 인삿말이 생기게 되었다.

다른 부부들에겐 일상의 아침 출근길 인사이었겠지만 나에게 설렘을 주는 그런 인삿말 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는 것처럼 뽀뽀라도 함 해볼까 몇번을 망설였지만 아직 시도조차 못했다.

처녀, 총각때 영화관에서 손 한번 잡아 볼려고 애만 쓰다 영화가 끝나 버린게 몇번이던가?

지금 그러한 설레임이 나에게 다시 찾아 온 것이다.

거 참, 이상한 일이다. 애 둘 다 키우고 시집보낸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뭐가 쑥스럽다고 그럴까.

그래도 아직 출근길 손 잡는 것도 , 더군다나 뽀뽀는 언감생심이다.

난 남편이다. 

오늘은 함 뽀뽀를 성공해 봐야지.

생각만 하다가 오늘도 그냥 '여보, 다녀옵니다. 오늘 일찍 들어 올 거예요.'

또 실패다.

 

내일은 가능할까?

아침 출근 시간이 두근거리게 기다려진다.

신혼이 별거겠는가?

아니, 아내도 나와 같은 생각을, 설렘을 가지고 있을까?  정말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