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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순 발효스콜레/장(醬) 이야기 강의와 행사

우리나라 된장의 맛

by 단계와 넓은여울 2015. 6. 4.

중식은 불의 맛이고 일식은 칼의 미학이라면 한식은 장맛일 것이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지만 정확하게 표현하기 힘들었던 된장의 맛에 대하여.

 

http://www.iessen.co.kr/essen/view.php?idx=3289

 

“된장은 사납지만 사람을 잘 따르는 충견 같아요. 공격적인 요소가 있지만, 겁을 먹지 않고 길들이면 묵묵하게 잘 따르죠. 맛과 향이 강한 된장 또한 다양한 시도를 하면 된장이 지닌 다양한 뉘앙스를 컨트롤할 수 있게 되어 그 매력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메주와 소금물과 숯과 고추의 조합. 메주가 소금물에 푹 잠기도록 대나무가지로 버텨 놓는다.

100여일이 지나면 메주와 소금물을 분리하여 된장과 간장을 가른다.

된장 가르기. 건져낸 메주에 알갱이가 많이 남지 않도록 치댄다.

된장을 장독에 담는다.  

소금을 살짝 뿌리고 김으로 마감을 하여 벌레 등이 들어가지 않도록 한다.

메주 알갱이가 남지 않도록  광목천에 거른다.

깨끗하게 걸러진 간장

 

장독대.

햇볕과 바람과 온도에 의해 된장, 간장은 그 맛이 깊어진다.

 

고구려의전국장(戰國漿)’에서 오늘날의 청국장과 된장이 나왔다.

http://tadream.tistory.com/5569

. 청국장의 기원

고대의 문헌 중에 된장과 관련된 기록보다는 된장과 유사한청국장에 관한 기록이 먼저 나타난다. 그것은 아마 청국장이 된장보다 앞서 만들어진 식품이기 때문일 것이다. 세계 최고(最古)의 농서라 할 수 있는 북위의『제민요술(齊民要術)』이라는 책에 청국장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라는 음식이 나온다. 거기에콩을 삶아 짚으로 싼 다음 곰팡이가 끼도록 띄우고 이를 짓이겨 독 속에 밀봉하고 햇볕에 쬐었다가 소금을 섞어 먹는다라고 되어 있다. 이처럼는 오늘날 우리가 먹는 청국장과 유사하며, 이후 중국 문헌에서는 콩을 발효한 식품의 통칭으로 불려졌다.   

고구려는 콩의 원산지이며, 옛 중국 문헌인 『삼국지』 「위지동이전」에서는 고구려가 선장양(善醬釀)이라 하여 발효문화가 발달하였다고 평가하고 있다. 의 냄새를 고려취(高麗臭)라고 하였다. 그리고 진나라의 『박물지(博物志)』에서는 외국 음식이라고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것의 원산지가 바로 고구려임을 알 수 있다. 

그러면 고구려에서는 어떻게 하여 청국장의 원조인가 만들어졌을까? 고구려는 잘 알려져 있듯이 정복사업을 활발히 폈던 나라이다. 그리고 경제의 상당부분을 정복전쟁을 통해서 조달하였고, 그 결과 부경이라는 창고가 발달하였다. 고구려 병사들은 정복전쟁에서 이곳저곳을 많이 옮겨 다녀야 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보급부대가 없이 비상식을 병사들이 직접 지참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 삶은 콩을 말안장 밑에 깔고 타고 다니면 사람과 말의 체온을 받아 발효하게 되는데 이것을 비상식으로 이용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요리할 필요도 없으며 완전식품일 뿐 아니라 고단백질이라 적은 양만 먹어도 많은 힘을 쓸 수 있었다. 게다가 상할 염려도 없었기 때문에 병사들의 휴대식품으로서 최상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를 전국장(戰國醬)이라고도 불렀던 것이다.   

고구려의 유장 대조영이 건국한 발해에서도책성지시(柵城之豉)’라고 하여 변방을 지키는 병사들이 군량으로서를 이용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어떻게혹은 전국장이 청국장으로 변하였을까? 한국의 전통에 정통한 이규태 씨는 『한국인의 밥상문화』에서병자호란에 참전한 오랑캐 병사, 곧 청국 병사들의 주된 군량이었던 데서 청국장이라는 말이 생겨난 것이 아닌가 싶다라고 청나라 병사들의 휴대식품설을 제기하고 있다.

이처럼 청국장은 고구려에서 시작되어 같은 북방민족인 여진족(만주족)에도 보급되었으며 우리에게는 오늘날까지 계승되어 중요한 식품의 하나로 애용되고 있다. 지역에 따라서는 청국장을 담북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에서담북장은 메줏덩이처럼 단단히 굳혀두었다가 이를 가루를 내어 끓여먹는다라고 하여 청국장을 장기적으로 보존하기 위해 메주처럼 말린 것을 담북장이라고 구별하고 있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낫도(納豆)라고 하여 우리처럼 찌개를 만들어 먹지 않고 날것으로 먹는 식품이 있는데, 이것 또한 고구려가 만든에서 파생되어 나온 것으로 이해된다.

. 된장의 기원

된장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우리나라 된장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앞서 지적한 『삼국지』의 「위지동이전」의 고구려 관련 기록을 들 수 있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선장양(善醬釀)에서()’이 곧바로 된장을 이야기하는지는 의문이다. 이것은 된장을 직접적으로 지칭하기보다는 오히려 청국장을 만들어온 전통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면 된장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오늘날 우리들이 즐겨 먹는된장에 대해서는 오래된 기록이 거의 없다. 왜일까?   

첫째, 모든 사람이 아는 일에 대해서는 기록할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삼국시대 초기에 고구려의에 대한 기술이 있고 그 이후 통일신라시대, 고려, 조선 전기에 이르기까지 장 담그기에 대한 기록이 없는 것을 보면 이미 삼국시대에 장 담그기가 일상화되었다고 보여진다. 조선 후기의 문헌 『구황보유방(救荒補遺方)』에 장 담그기에 대한 기록이 있으나 그것은 우리나라의 전통 장 담그기에 관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둘째, 우리나라 각 가정에서 행해지는 장 담그기 기술은 문자로 표현하여 알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우리나라에서 장 담그기는 각 가문 여인네들의 기본적인 일이었고, 시어머니에서 며느리로 오랜 시간에 걸쳐 체험을 통해 전수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문자나 말로써가 아니라 눈대중과 손대중 그리고 감각으로 익혀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문자로서 나타낼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셋째, 우리나라에서 장 담그기는 신성한 의식이었으며 각 가문의 전통이며 비법이었다. 그래서 장 담그기는 좋은 날을 받아 시행하였고, 집안의 안주인이 직접 참여하였으며 다른 집안사람이 오는 것을 금하였다. 그래서 장맛은 곧 그 집안 여인네의 자랑이었으며 자부심이었던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된장이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앞서도 이야기하였으나 삼국시대 중기 이후에는 이미 오늘날과 같은 된장이 완성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왜냐하면 삼국시대 중기 이후부터는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삼국시대 중기 이후에는 우리나라에서도 한자를 비교적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있었음에도 그 기록이 없다는 것은 이미 일반화되어 기록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고려 이후에도 기록이 없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라고 본다.   

그러면 삼국시대에 어떻게 된장이 완성되었을까? 그것에 대해서는 어떠한 증거자료도 없기 때문에 상상 속에서 추론할 수밖에 없다. 오늘날 된장의 모습과 우리 민족의 역사를 통해 된장의 형성과정을 역으로 추론해 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지 않을까? 오늘날 우리들이 가장 많이 애용하는 된장은 늦가을에 콩을 삶아서 절구로 대충 짓이긴 후 메주 틀에 넣어 모양을 만들고, 그것을 자연 상태에서 건조시키면서 곰팡이를 받아 발효시킨 후, 봄이 채 오기 전에 항아리에 넣어 소금물에 절이면서 더욱 숙성시키고, 초여름이 시작될 무렵 간장을 뜨고 메주 덩이 장을 으깨어서 소금과 함께 항아리에 재여 더욱 숙성시켜서 만든다.     이처럼 된장은 장기간에 걸쳐 두 번씩이나 숙성시키는 과정이 있어 청국장보다 깊은 맛을 낼 수 있고 또 장기간 보존 식품이 될 수 있었다.   

이에 비해 청국장은 콩을 삶아 일정 정도의 열을 가해 급히 발효시켜서 빠른 시일 안에 먹을 수 있는 특징이 있다. 반면에 얼마 지나지 않아 곧 부패하여 버려야 하는 문제점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물론 물기를 적게 하면 어느 정도는 보존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가장 좋은 군량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청국장이 부패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청국장이 부패하여 먹지 못하게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바싹 말려야 했는데 이것은 이미 청국장은 아니다. 그래서 이것을 담북장이라고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 담북장을 먹기 위해 말라서 딱딱해진 장을 물에 넣어 끓여 먹는 방법을 발견했을 것이다. 이 담북장을 가지고 찌개 끓이는 것을 상상해 보면 오늘날 된장찌개와 흡사함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맛이 깊을 리는 없다. 여기서 청국장 혹은 담북장을 개선할 필요가 생겨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민족이 전통적으로 식품을 보존하는 방법으로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띄우는 방법이며 다른 하나는 절이는 방법이다. 양쪽 모두 발효시킨다는 점에서는 같다. 띄우는 방식은 청국장과 같이 내륙의 북방민족이 일찍부터 사용해 오던 방법이며, 절이는 방법은 남방의 해양민족이 야채 등을 보존하기 위해 발견한 방법이다. 우리 민족이 대륙의 북방민족과 남방의 해양민족이 결합되어 형성되었듯이 우리 음식도 북방식과 남방식이 융합되어 만들어졌다고 본다. 이것은 우리 민족의 전통 가옥인 한옥이 북방민족이 개발한 온돌과 남방민족이 상용하는 마루가 결합되어 완성된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된장은 바로 북방민족의 청국장과 담북장이 남방 해양민족의 식문화와 만남으로써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 콩을 띄운 청국장 혹은 담북장을 가지고 김치와 같이 소금물에 절이는 조리법을 응용함으로써 탄생되었다고 추정할 수 있지 않을까? 일찍이 부여에서콩으로 간장과 된장이 섞인 걸쭉한 장을 담갔다라고 하는데, 이것은 바로 된장의 초기 형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