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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야기

이젠 혼자 나가실 생각하지 마세요.

by 단계와 넓은여울 2015. 6. 17.

'그 접시에 있는 건 다~ 드셔야 해요.'

"이 정도는 먹을 수 있어."

'다 드시고 요기 토마토, 껍질 벗겨서 설탕 뿌려 놓은 것만 드세요. 나머진 내가 먹을 거니깐.'

"알았어."

'근데 어젠 뭐 하실려고 나가셨어요?'

"은행 다녀 올려고."

'은행에 왜~  누가 돈 가져 갔을 까 봐서?'

"종현이 100만원 통장 하나 만들어 주려고. 그리고 어디 간다는데 10만원만 찾아서 주려고."

집안에서도 혼자 힘으로 걷는게 만만치 않은데 어떻게 은행까지 걸어 가셨을까?

'어떻게 가셨어요. 혼자서.'

"지팽이 짚고 걸어갔지. 천천히. 힘들어"

'큰 일나요. 그러다 지난번처럼 넘어지기라도 하면 어떻할려고 그래요. 이젠 다 끝이예요.'

"알아."

'또, 병원 가시려고 그러세요.'

 

'돈 많아요?'

"흐흐흐 그전엔 9만원 주던걸 박근혜가 대통령되고 20만원씩 들어오니깐 많아."

'박근혜가 주는게 아니예요.'

"아니, 다들 박근혜 때문에 많이 받게 됬다고 하던데."

참, 정치하기 쉬운 우리나라다.

'아니, 양상추 그만 넣고 있는 것만이라도 다 드세요.'

"먹다가 남으면 냉장고에 넣어 놨다거 이따가 내가 먹으면 돼."

'냉장고에 넣어 놨다가 드시면 무슨 맛이 있어요. 그냥 먹어도 제대로 못 드시면서.'

"맛 필요 없어. 어차피 맛있어서 먹는게 아니냐. 그냥 먹는거지."

'나이 들면 다 그런거예요. 무슨 맛이 그렇게 있겠어요.'

"이젠 맛도 모르고 멍청이가 되어 버렸어"

'멍청이가 됐다 뭐 그러지 좀 마세요.'

"생각이 안나, 하나도."

 

"흐흐흐 그전엔 9만원 주던걸 박근혜가 대통령되고 20만원씩 들어오니깐 많아."

'박근혜가 주는게 아니예요.'

"아니, 다들 박근혜 때문에 많이 받게 되었다고 하던데."

참, 정치하기 쉬운 우리나라다.

'그러면 종현이 올때까지 집에 못 들어 오시고 어디 가 있었어요.'

"번호가 생각이 안나. 한번도 그런 적이 한번도 없는데 멍청이가 됐나 봐."

'그러니까, 어디 계셨냐니깐.'

"밖에 그냥 앉아 있었지."

'1층은 어떻게 들어 오셨어요?'

"응, 1층은 들어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깐,  그냥 들어 왔지. 거기도 생각이 안 나."

'집 번호는 종현이 생일 이잖아요. 0509, 5월 9일. 종현이 생일이 몇일이예요.'

"5일?"

'아니, 5월 몇일이예요.'

"5일."

'아니, 5월 몇이이냐고요.'

"으응, 9일"

'그럼 몇번을 눌러야 되요.'

"5"

'아니, 05'

"05"

'그렇지 그리고 또 몇번?'

"05"

'그리고~~'

"9"

'아니, 09'

"으응 09"

'몇번 누른다고?'

"05~~9?"

'아니, 09.  내 생일이 언제예요.'

"아범 생일? 으응, 생각이 안 나는데. 정월이던가?"

'맞아뇨. 1월. 몇일.'

"흐흐 글쎄 모르겠네. 멍청이가 되어 버렸어. 왜 그러지? 생각이 안나."

아니, 도대체 내가 지금 엄마와 무슨 얘길 하고 있는 것인가?

'이젠 혼자 나가실 생각하지 마세요.'

"......."

 

이번 5개월 입원하시고 계시면서 뇌세포가 상당부분 파괴가 되어 버린 모양이다.

베란다에서 키우던 호야꽃.(줄기가 추욱 늘어져 있고 늘어진 줄기끝에서 꽃이 피는 원예종)

추욱 늘어진 줄기가 말라있는 가지로 생각하시곤 늘어진 것만 싹뚝싹뚝 모조리 잘라 버리셨다.

베란다에 있는 화분들도 조금 말라 보이는 가지와 잎새는 깔끔하게(?) 손을 보셨다.ㅎㅎㅎㅎ

'이걸 모조리 잘라 버리시면 어떻게 해요. 애미가 꽃 보려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시들어 있는게 보기 싫어서 잘랐지."

'많이도 잘라 버렸네.'

"꽃이 하나도 없던데."

'이제 필려고 준비하고 있었던거예요.'

"몰라, 늘어져 있는게 걸리적거려서 잘랐어."

'그게 도대체 누구한테 걸리적거려요.'

"그냥 늙어서 늘어져 있는게 보기 싫어. 너나 나나 오래 살아있는게 죄지."

 

씹으려고 하질 않고 맵고 짠 반찬을 못 드시니 아침은 식빵을 우유/계란에 젹셔 후라이판에 구워 드시고

점심은 찹쌀밥에 김말이를 하고 동치미국물로, 저녁은 주로 설렁탕 라면으로 식사를 하신다.

그 찹쌀밥에다가 냉장고에 들어 있던 단단한 팥을 한웅큼 뿌려 놓으셨단다.

'찹쌀밥을 그냥 김에다 드시지 왜 팥은 뿌리셨어요.'

"팥 먹으면 좋다고 해서."

'누가 그래요.'

"그 전부터 팥 먹으면 좋다고 했어. 그 전에 나도 많이 먹었잖아."

'아니, 삶은 팥도 아니고 그 단단한 걸 어찌 드셨어요.'

"그래, 단단해서 팥을 못 먹었지. 단단한지도 몰랐어."

 

 

노인 요양환자들만 있는 병실에서 몇달 계시더니 뭔가 변화가 생겼다.

5개월사이에 생각하시는게 확연히 달라지신게 분명하다.

기억력이 아주 많이 쇠퇴해 버린것이 틀림없다.

"아범, 다 먹었으면 일어나. 출근해야지. 내가 천천히 먹고 치울테니깐."

"하루종일 있으면서 뭐해. 멍청히 앉아 있는 것도 힘들어. 조금씩 움직여야지." 

'알았어요. 여기 있는것만 치우고 나갈께요.'

"현관 번호 어디에다가 적어주고 가."

'아니, 또 어디 나가시게?'

"아니, 그냥 알아놓게."

'나가시지 않으면서 뭐 할려고 알아 놔요.'

"그러니까, 적어 놓고 가."

'알았어요.'

참, 걱정이다.

 

증조할머니와 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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