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뭘 그리 바쁘세요.'
장농을 열었다, 닫았다 하시면서 무슨일인가?
하였더니 오늘 누나집에 가시는 날인 모양이다.
중간 쇼핑백으로 2개를 챙기셨다.
거의 6개월 입원하셨다가 퇴원한 후 외출이 어려우니 답답하시긴 할게다.
누나가 경기도 광주 오포읍 주택에 살고 계신다.
큰딸 둘째 손주 보시느라 집에 계신 관계로 엄마가 원하시면 한달정도 와 계시라고 한 지가 꽤 되었다.
내가 결혼후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엄마는 집을 떠나 본 적이 없는 분이시다.
그동안 수차례 누나나 매형이 며칠간이라도 내려와 계시자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한번도 집을 떠나 본적이 없으셨던, 둘쨰 아들 곁을 떠나 본 적이 없었던 분이셨으니깐.
이번에 정말 파격적으로 누나집에 한달가량 머물러 보시겠다고 결심을 하셨다.
올해 왼쪽 고관절 큰 수술하시고 분명 심적인 큰 변화가 생기신게 틀림없다.
그동안 함께 산 아들. 며느리 편안하게 해 주겠다는지는 모르겠지만 큰 결심인 건 분명하다.
분명 아들, 며느리 눈치가 보인게 틀림없다.
저렇게 순순히, 쾌히 그것도 한달씩이나 가 계시겠다니, 심적인 변화가 있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함께 살긴 했어도 나이 들어가니 어찌 자식들 눈치가 보이질 않겠는가 마는
시시콜콜 참견하는 아들 잔소리 듣기도 지겹고, 며느리 눈치 보는 것도 지쳤고 그러신게다.
센트리엄 약병, 아스피린 약병도 챙기신다.
담주 화요일이 아버지 기일이어서 이번주 일요일에 아버지 산소에 가기로 했는데
아버지 산소에 가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니 꼭 함께 가시겠다고 하셨다.
"일요일날 산소에 간다고 했지. 이것 애미한테 줘라."
봉투를 내미신다.
'엄마가 직접 주세요.'
"그래도 대통령이 돈을 많이 줘서."
매달 20십만원이 통장에 입금되는게 대통령 때문으로 알고 계신다.
우리나라 선진국되고 민주주의 국가 되려면 아직도 멀었다.
아버지 돌아가신지도 5년이 되었으니 많이 힘드신게 분명하다.
더군다나 드시는게 없으니 밥맛, 입맛을 잃어버리신지도 수년 되었으니 무슨 즐거움이 있겠는가.
군대 3년과 출장으로 내가 집을 비운 시간 제외하고는 60년 이상을 함께 살았는데,
참, 엄마가 병원에 입원한 기간만도 합하면 1년이 훨 넘겠네.
그런데 괜히 그냥 내곁을 떠나신다는 생각이 드는건 왜 일까.
매형이 오전중 시간봐서 모시러 온다고 했다.
누나가 손주들과 늘 집에 계시니 어쩌면 좀 더 편할 수도 있겠다 싶다.
아니 더 편하게 계셨으면 좋겠다.
'불편하거나 계시기 싫으면 언제라도 집으로 그냥 돌아 오세요.'
"그래, 내가 알아서 할테니 걱정하지 마."
별 다른 할 얘기가 없다.
출근한다는 핑게로 서둘러 집을 나섰다.
오늘은 '다녀 오겠습니다.' 인사도 못했다.
어제 고등학교 청록회 친구들과 저녁 먹으면서 들은 얘기가 있다.
뉴질랜드로 이민간지가 15년여가 되는 친구가 오랜만에 서울에 들렀다.
한 친구가 묻는다.
'어머니 어떠시니?'
"응, 아직 살아 계셔."
'아니, 살아계시다니, 그게 말이라고 하니? 엄마한테.'
"엄마도 이제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씀 하시거든. 아흔다섯이야"
'그래도 그렇지.'
"내가 모시지도 못하고 있는데, 서로가 말을 못해서 그렇지. 사실만큼 사신거야.'
그래, 그렇지. 참 어려운게 노인 문제다.
살아 계시는게 좋은건 자식인 나의 도덕성의 문제이고 부모 돌아가신 사람들의 부러움아닌 부러움일 뿐이다.
하루종일 무슨 재미가 있고 즐거움이 있겠는가.
말벗이 있나, 만날 사람이 있나, 돌아 다닐 곳이 있나, 맛을 모르니 뭘 먹을게 있나?
어쩌다 하는 일이라곤 자식들에게 핀잔만 듣고, 그러다 보니 눈치만 늘고.
사는 게 도대체 무엇인가 말이다.
"아직까지 살아있는게 웬수지, 뭐가 웬수겠어."
엄마의 넋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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