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교통일정
9시30분 서초구청앞 출발(2대) – 1대는 일산(대화역 4번 출구) 경유
9시50분 본점 출발 1대
10시30분 파주출판단지 자유로휴게소 도착(휴식시간 15분) - 10시 45분 출발
11시30분 자운서원 도착 (관람시간 50분)
12시20분 자운서원 출발
12시40분 장단가든 도착 (식사시간 1시간20분)
14시 장단가든 출발
14시20분 반구정 도착 (관람시간 40분)
15시10분 반구정 출발
15시20분 임진각 도착 (관람시간 40분)
16시10분 임진각 출발
17시30분 외환은행 본점 도착(1대)
18시 서초구청앞 도착(2대) - 1대는 일산(대화역 4번 출구) 경유
2. 문화 유적 답사지
자운서원 : 경기도 파주시 법원읍 동문리 소재
율곡 이이선생(1536년(중종 31년) 강릉 오죽헌에서 태어나 파주 율곡리에서 성장)을 봉안한 사액서원(임금이 서원의 편액을 내려주어 책과 토지 등을 지급하고 각종 세금을 면제해 주는 서원)으로 1615년(광해군 7)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이이(李珥)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650년 (효종 1)에 ‘자운(紫雲)’이라고 사액되었으며, 1868년(고종 5)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어 위패는 매안(埋安)하고 서원터에 설단(設壇)하여 향사를 지내왔다. 그 뒤 김장생(金長生) 과 박세채(朴世采)를 추가 배향하여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왔다.
경내의 건물로는 팔작지붕으로 된 6칸의 사우(祠宇) 문성사, 신문(神門) 내삼문과 외삼문, 동서 협문(夾門) 수양재(서문)과 입지재(동문) 등이 있으며, 담장 밖에는 묘정비(廟庭碑)가 세워져 있다. 서원의 좌측 능선에는 이이와 양친의 묘소가 있다. 이 서원은 경기도 기념물 제45호(1973.7.10 지정)이며, 묘정비는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77호로 지정되어 있다.
가족묘소를 오르는 여현문(如見門)이 있으며 경내 오른쪽 산기슭에 전각과 신도비(율곡 이이의 일대기를 기록 : 이항복 짓고 신익성 글씨, 전액은 김상용)가 있고 제사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숙식을 제공 하던 재실이 있다. 서원은 자운문(紫雲門 외삼문)으로 들어서면 강인당(유생들의 강학 장소)이 보이고 양 옆으로 460년과 479년 된 느티나무가 늠름하게 서 있다. 내삼문이 있고 향나무가 서 있으며 윗쪽으로 문성사(가운데 율곡 영정 및 위패와 오른쪽 김장생, 왼쪽 박세체의 영정이 있다)가 보인다. 문성사앞에는 관세위(盥洗位 제식에 앞서 손을 씻는 곳)와 망료위(望燎位 제식이 끝나고 축문을 태우는 곳)가 있다. 묘정비는 율곡 이이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한 자운서원의 내력이 적혀 있는데 비문은 송시열, 글씨는 김수증, 머릿글은 김수창이 썻다.
자운서원
신도비 : 율곡 이이의 일대기를 기록(이항복 짓고 신익성 글씨, 전액은 김상용)
자운문
묘정비
강인당 양옆 느티나무 (460년과 479년 된 느티나무)
문성사앞 향나무
여현문
임진강, 저멀리 전진교가 보인다.
화석정
방촌 황 희(厖村 黃 喜) 유적지
조선초기 명상이며 조선시대 최장수 청백리 정승 황희(1363~1452) 정승의 영정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방촌영당(厖村影堂), 경모재(景慕齋), 반구정(伴鷗亭), 앙지대(仰止臺)가 있다.
1353년(공민왕 12년)~1452년(문종 2년),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장수(長水), 초명은 수로(壽老),자는 구부(懼夫), 호는 방촌(尨村), 석부(石富)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균비(均庇)이고, 아버지는 자현대부판강릉대도호부사(資憲大夫判江陵大都護府使) 군서(君瑞)이며, 어머니는 김우(金祐)의 딸이고, 개성 가조리(可助里)에서 출생하였다.
1376(우왕 2년)복안궁녹사(福安宮錄事)가 되었다. 1383년에는 사마시, 1385년 진사시에 각각 합격하였고, 1389년에는 문과에 급제한 뒤1390년(공양왕 2년) 성균관 학록이 되었다. 1392년 고려가 망하자 두문동(杜門洞)에서 은거하다가 1394년(태조 3년) 조정의 요청과 두문동 동료들의 천거로 성균관 학관이 되었으며, 세자의 스승인 세자우정자(世子右正字)를 겸임하였다. 이후 조정의 주요 관직을 두루 거쳐, 6조의 판서를 역임하였다.
태종의 신뢰를 받았으나 1418년 세자(양녕대군) 폐출의 불가함을 강하게 주장하다가 태종의 진노를 사서 폐서인이 되어 교하(交河)와 전라도 남원(南原)에 5년간 유배되었다가 태종의 건의로 세종에 의해 다시 복직되었다. 이후 굶주림이 장기화 된 강원도에 관찰사로 나가 백성의 어려움을 잘 살피고 민심을 얻었으며 동시에 세종의 신뢰 또한 얻게 된다.이후 이조판서와 우의정 좌의정 겸 세자사(世子師:세자의 스승) 등을 지냈으며, 1431년(세종 13년) 69세의 나이로 영의정이 되었다.
이후 18년동안 세종을 잘 보필하며 태평성대를 이끌다가 87세에 관직에서 물러났다. 은퇴한 뒤에도 국가 중대사의 경우 세종의 자문에 응하는 등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파주 문산 반구정에서 갈매기와 같이 여생을 보내다가 향년 90세에 서거하여 파주 탄현 금승리에 안장되었다.
청산임황하(靑山臨黃河) 푸른산은 황하에 임하였는데
하유장안도(下有長安道) 그 아래는 장안으로 가는 길이 있네
세상명리인(世上名利人) 세상에 명리만 아는 사람은
상봉불지노(相逢不知老) 서로 만나도 어른을 모르는구나
임진각과 평화누리공원
남방한계선(방책선) 비무장지대
한반도 비무장지대(韓半島非武藏地帶, Korean Demilitarized Zone, DMZ)는 한국전쟁 이후 1953년 체결된 정전 협정에 의해 성립된 비무장 지대이다. DMZ(demilitarized zon).
무력충돌을 방지하거나 국제적인 교통로를 확보하기 위하여 설치되며, 이 지역에서는 군대주둔, 무기배체, 군사시설 설치가 금지된다.
우리나라의 비무장지대는 '한국휴전협정'에 의해서 설치된 군사분계선으로 명확히 구분하여 이 선으로부터 남북으로 각각 2km씩 4km의 폭과 155마일(약 250km)의 군사분계선(MDL) 약 3억평의 완충지대를 뜻한다. 1953년 7월 27일 '한국전 정전협정'에 따라 설치.
DMZ 남북한 경계선의 남쪽은 남방한계선, 북쪽은 북방한계선으로 각각 불린다.
비무장지대안에는 한국 주민이 사는 대성동 '자유의 마을'과 통일촌과 장파리마을(해마루촌)이 있으며 북한측에는 '평화의 마을'로 이름 붙여진 마을이 있다.
자유의 다리
장단가든
'국내여행 >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외환은행동우회 봄 체력단련행사 - 청풍문화재단지 (0) | 2016.04.19 |
---|---|
2015년 가을 체력단련 화합행사(외환은행동우회) (0) | 2015.10.21 |
외환은행동우회 2015년 봄 야유회 (0) | 2015.05.14 |
외환은행동우회 2015년 봄 야유회 답사 (0) | 2015.03.26 |
울릉도 둘째날 알봉분지, 추산(11월12일) (0) | 2014.11.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