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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말씀

삼위일체 대축일 - 현상과 실재

by 단계와 넓은여울 2019. 6. 19.

복음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신 것은 모두 나의 것이다. 성령께서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12-15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2 “내가 너희에게 할 말이 아직도 많지만
너희가 지금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다.
13 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스스로 이야기하지 않으시고 들으시는 것만 이야기하시며,
또 앞으로 올 일들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다.
14 그분께서 나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15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신 것은 모두 나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께서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라고 내가 말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강론 >> 주임신부 박성칠미카엘

 

삼위일체 대축일                                                          2019. 06. 16 

 

당신의 빛은 만물의 형상(形像) 속에 있고

모든 존재 속엔 당신의 사랑이 깃들어 있다네(...)

()은 누구인가(...) 신은 누구인가 (수피 수행자들의 노래/ 신은 누구인가

 

볼 견()’볼 관()’이라는 한자가 있습니다.

자는 눈 목()’자 밑에 사람 인()’자가 있습니다.

사람이 눈으로 무엇인가를 볼 때, ‘자를 씁니다.

견물생심(見物生心) 이란 말에 이 자가 들어가네요.

백화점에 가서 물건을 보니(見物), 갖고 싶은 마음이 일어난다(生心)는 말입니다

 

자의 오른쪽엔 자가 있고, 왼쪽은 올빼미의 모습을 나타냅니다.

올빼미 는 야행성 동물입니다.

아무도 보지 못하는 깜깜한 밤중에 올빼미는 모든 것을 본다는 것이죠.

그래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본다고 할 때자를 씁니다.

반야심경(般若心經)에서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 할 때 이 한자가 사용됩니다.

진리의 세계 안에서 모든 것을 본다는 것이죠.

 

철학(哲學)에서는 눈에 보이는 것을 현상(現像)’이라고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는 실재(實在)’, 혹은 본체(本體)’라고 하죠.

은 눈에 보이는 세계 너머의 진짜 세계, 실재의 세계를 보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강물에 비친 달은 현상이고 하늘에 있는 달은 실재입니다.

강물에 비친 달을 보고(), 우리는 하늘에 달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월인천강(月印千江)이란 말이 바로 그 말입니다.

월인천강(月印千江)이란 천 개의 강에 달이 도장을 찍었다는 말입니다.

한강에, 두만강에, 금강에 섬진강에 달이 비치고 있습니다.

천 개의 강이 흐른다면 천 개의 달이 비칠 것입니다(千江流水 千江月).

그러나 하늘의 달은 하나뿐이란 것이죠.  

 

무슨 말인고 하니, 본체와 실재는 하나인데 현상은 여럿이라는 말입니다.

현상은 여러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그 이면에는 하나의 본체가 있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현상과 본체는 둘이 아니라 하나가 될 것입니다.

이 진리를 신라시대의 의상 대사(義湘, 625~702)는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일중일체 다중일(一中一切多中一)

일즉일체 다즉일(一卽一切多卽一

 

하나 속에 일체(모든 것)가 들어갑니다.

모든 것 안에 하나가 들어가 있습니다.

하나가 곧 모든 것이요, 모든 것이 곧 하나입니다.

하나가 곧 전체요, 전체가 곧 하나입니다. (의상/ 법성게法性偈

 

종교와 철학은 이렇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종교에 철학이 없다면 그것은 종교가 아닙니다.

종교는 우주와 세계의 복잡한 현상 너머에 있는 하나의 실재 세계를 드러내 줍니다.

눈에 보이는 수많은 현상은 하나의 실재세계가 여러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뿐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엄청나게 많지만 결국은 하나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불가에서는 만법귀일(萬法歸一)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성경에는 이런 표현이 없을까요?

왜 없겠습니까?

에페소서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이며 성령도 하나입니다(...)

주님도 한 분이시고(...)

만민의 아버지이신 하느님도 한 분이십니다.

그분은 만물 위에 계시고

만물을 꿰뚫어 계시며

만물 안에 계십니다 (에페소 4, 4-6).  

 

바오로 사도의 말씀에서 우리는 의상대사의 화엄철학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교와 불교가 이렇게 넘나들고 있는 것이죠.

세상에 여러 종교의 가르침이 있지만 그것도 결국 하나로 통할 것입니다.

종교라는 현상은 많지만 결국 하나의 실재를 나타낸다 할 것입니다.  

 

이것을 현대 이스라엘의 시인인 벤야민 치프(Benjamin Ziv)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수많은 빛 - 하나의 태양(...)/ 수많은 거짓 - 하나의 진실

수많은 감정 - 하나의 사랑(...)/ 수많은 사람 한 분 아버지

수많은 믿음 한 분 하느님

 

오늘은 삼위일체 대축일입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은 성부, 성자, 성령께서 사랑으로 하나가 된 하느님입니다.

한 분 하느님이 다양하게 여러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결국 한 분 하느님이라는 것입니다.

여러 다양성을 하나로 만들어주는 것,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만들어내는 다양성을 인정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 다양성(수많은 현상)을 인정하며 일치(하나)를 이루는 것은 더욱이나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게 하나로 돌아가자는 것, 그것이 우리의 신앙인지도 모릅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결국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한 분 하느님께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빛은 만물의 형상(形像) 속에 있고

모든 존재 속엔 당신의 사랑이 깃들어 있다네(...)

신은 누구인가(...) 신은 누구인가

 

오늘의 묵상

오늘은 삼위일체 대축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성부, 성자, 성령의 세 위격으로 구별되지만 한 분이시라는 삼위일체의 교리는,
일단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삼위일체는 하느님 생명과 사랑의 움직임이기에 단순히
하느님 안에서의 신비에 머무르지 않고, 우리에게 다가오시고 당신을 계시하시며 우리를 그 신비
안으로 초대하십니다.
성경에서 거듭 말하고 있듯이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런데 참사랑이란 자신 안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향하여 열려 있는 것이고, 그에게 가서 자신을 내어 줌으로써 관계를 맺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는 이 사랑을 하느님의 구원 경륜 안에서 계시된 사건, 그리스도의 육화 사건 안에서 발견합니다.
성부께서 자신을 온전히 내어 주실 때 성자께서 사람으로 태어나셨고, 사람이 되신 성자께서는
십자가상 죽음으로 당신이 성부께 받은 것을 온전히 성부께 돌려 드리십니다.
이렇게 성부와 성자 간의 완벽한 상호 증여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성취되었고, 거기에서
성령께서 우리에게 파견되십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완전한 사랑을 나눔으로써 생겨난 공통의
사랑이 성령이시며, 그 성령께서는 이제 하느님 안에 머물던 사랑의 신비를 우리에게도 나누어
주십니다. 우리도 성자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성부를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고,
성부의 생명에 참여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삼위일체의 신비는 "나"와 "너"가 만나서 관계를 이루고 사랑으로 일치하면서도 결코 한 쪽에
치우치거나 개성을 포기하는 일 없이, 서로의 존중 속에 하나가 되어 결국 "우리"가 되는 공동체의
신비이기도 합니다. 비록 우리가 하느님의 신비를 다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겸손과 흠숭으로
이 신비를 경축하며, 그 신비를 우리 삶 속에서 드러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성근 사바 신부)

오금동 성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