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지나면 또 잊혀질까봐 이 일은 결코 잊지 않으려고 블로그에 남겨 놓는다.
아직도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모르는 지도자. 가슴이 없는 지도자와 그 추종자들.
어디부터 손을 써야 할지를 모르는 정부. 정말 내가 사는 울 나라가 맞나요?
아! 답답하다. 궁민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세월호가 아니라 울 나라가 침몰했다.
박선배님이 링크를 공유했습니다. 4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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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게 국민은 그들의 권력 유지와 돈벌이 이용도구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그들은 국민이 아니라 그 위에 군림하는 별도의 생명체였다. 죽일 놈들.biz.chosun.com
세월호 애도속 美대통령 보좌진은 엄숙한데, 청와대 수석들은 웃는 모습
한 시민이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린 글
"당신이 대통령이어선 안되는 이유"
朴퇴진 요구.. 일파만파!!
*이 글이 삭제될 수 있으니.. 켑쳐나 복사해 두세요!!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5&articleId=2708570&pageIndex=1
당신이 대통령이어선 안되는 이유....
정송은 2014-04-27 09:51:27 조회수 4426 공감수 623
숱한 사회 운동을 지지했으나 솔직히, 대통령을 비판해본적은 거의 없다
그러나 처음으로 이번만큼은 분명히 그 잘못을 요목 조목 따져 묻겠다.
지금 대통령이 더 이상 대통령이어서는 안 되는 분명한 이유를.
대통령이란 직책, 어려운 거 안다. 아무나 대통령 하라 그러면 쉽게 못 한다. 그래서 대통령을 쉬이 비판할 수 없는 이유도 있었다. 그리고 대통령 물러나라 라는 구호는 너무 쉽고, 공허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부가 아무리 무능해도 시민들이 정신만 차리면 그 사회를 바꿔 나갈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 대통령은 대통령으로 임무를 수행 해야할 아주 중요한 몇 가지를 놓쳤다.
첫째, 대통령은 자기가 해야 할 일이 뭔지도 몰랐다.
대통령이 구조방법 고민 할 필요 없다.
리더의 역할은 적절한 곳에 책임을 분배하고, 밑의 사람들이 그 안에서 최대한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게 해주고, 밑에서 문제가 생기면 그 책임을 지는 것이 기본이다. 특히 아래 사람들끼리 서로 조율이 안 되고 우왕좌왕한다면 무엇보다 무슨 수를 쓰든 이에 질서를 부여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안행부 책임 하에서 잘못을 했다면 안행부가 책임지면 된다. 해수부가 잘못했으면 해수부가 책임지면 된다. 그런데 각 행정부처, 군, 경이 모여있는 상황에서 가 책임소관을 따지지 못하고 우왕좌왕했다면, 그건 리더가 제 소임을 다하지 못한 거다. 나는 군 최고 통수권자이자 모든 행정부를 통솔할 권한이 있는 사람은 우리나라에서 딱 한 명 밖에 모른다. 대통령이다.
대통령이 했어야 할 일은 현장에 달려가 상처 받은 생존자를 위로한답시고 만나고 그런 일이 아니다. 그런 건 일반인도 할 수 있는 일이다.
‘구조 왜 못하냐, 최선을 다해 구조해라’ 그런 말은 누구라도 할 수 있다. ‘잘 못하면 책임자 엄벌에 처한다’ 그런 호통은 누구나 칠 수 있다. 대통령이 할 일은 그게 아니다.
‘중국인들이 우리나라에서 왜 쇼핑을 못 한답니까?’ 그런 말 하라고 있는 자리 아니다.
공인인증서 폐기하라고, 현장에 씨씨티비 설치하라고, 그러라고 있는 자리 아니다.
일반인들이 하지 못하는 막대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대통령에 책임이 있는 거다. 대통령? 세세한 거 할 필요 없다. 대통령은 대통령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라.
일이 안 되는 핵심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점을 찾는 일, 뭐가 필요하냐 묻는 일. 그냥 해도 될 일과 최선을 다할 일을 구분하고 최선을 다해도 안 되면 포기할 일과 안 돼도 되게 해야 할 일을 구분해주고, 최우선 의제를 설정하고 밑의 사람들이 다른 데 에너지를 쏟지 않을 수 있도록 자유롭게 해주는 일, 비용 걱정 하지 않도록 제반 책임을 맡아 주는 일
영화 현장의 스탭들은 감독이나 피디의 분명한 요청만 있다면 아무리 어려운 일도, 안 돼는 일도 되게 한다.. 단, 조건이 있다. 어려운 일을 되게 하려면 당연히 비용이 오버 된다. 이 오버된 제반 비용에 대한 책임. 그것만 누군가 책임을 져 주면, 스탭들은, 한다.
리더라면 어떤 어려운 일이
‘안 돼도 되게 하려면’
밑의 사람들이 비용 때문에 망설일 수 있다는 것쯤은 안다.
그것이 구조 작업이던 뭐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면 무조건 돈이 든다. 엄청난 돈이.
만약 사람들이 비용 때문에 망설일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면’
그건 대통령이 정말로 누군가의 말단 직원인 적도 없었고 비용 때문에 고민해 본 적도 없다는 얘기다. 웬만한 중소기업 사장도 다 아는 사실이다.
만약 리더가 너 이거 죽을 각오로 해라. 해내지 못하면 엄벌에 처하겠다 라고 협박만 하고 비용도 책임져주지도 않고, 안 될 경우 자신은 책임을 피한다면, 그 누가 할 수 있겠는가?
사람을 구하는데 돈이 문제냐 하지만, 실제 그 행동자가 되면 달라진다. 유속의 흐름을 늦추게 유조선을 데려온다? 하고 싶어도 일개 관리자가 그 비용을 책임질 수 있을까? 그러나 누군가 그런 문제들을 책임져주면 달라진다
“비용 문제는 추후에 생각한다. 만약 정 비용이 많이 발생하면 내가 책임진다.”
그건 어떤 민간인도 관리자도 국무총리도 쉬이 할 수 없는 일이다.
힘 없는 시민들조차 죄책감을 느꼈다. 할 수 있었으나 하지 못한 일, 그리고 전혀 남 일인 것 같은 사람들조차 작게나마 뭘 할 수 있었을지를 고민했다.
그러나 그 많은 사람들을 지휘하고 이끌 수 있었던, 문제점을 파악하고 직접 시정할 수 있었던, 해외 원조 요청을 하건 인력을 모으건 해양관련 재벌 회장들에게 뭐든 요청하건, 일반인들은 할 수 없는, 그 많은 걸 할 수 있었던 대통령은 구조를 위해 무슨 일을 고민했는가?
둘째, 사람을 살리는 데 아무짝에 쓸모 없는 정부는 필요 없다
대통령은 분명 ‘구조에 최선을 다하라’ 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왜 지휘자들은 ‘구조에 최선을 다하지’ 안았을까?
그것이 한 두 번의 명령으로 될까?
날씨 좋던 첫째날 가이드라인 세 개밖에 설치를 못했다면, 이러면 애들 다 죽는다. 절대 못 구한다 판단하고 밤새 과감히 방법을 바꾸는 걸 고민하는 사람이 이 리더 밑에는 왜 한 사람도 없었는가? 목숨걸고 물 속에서 작업했던 잠수사들, 직접 뛰어든 말단 해경들 외에, 이 지휘부에는 왜 구조에 그토록 적극적인 사람이 없었는가?
밑의 사람들은 평소에 리더가 가진 가치관에 영향을 받는다. 급한 상황에서는 평소에 리더가 원하던 성향에 따라 행동하게 되어 있다. 그것은 평소 리더가 어떨 때 칭찬했고 어떨 때 호통쳤으며, 어떨 때 심기가 불편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만약 리더가 평소에 사람과 생명을 최우선 가치로 두었던 사람이라면
밑의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서던 말 하지 않아도 그것을 최우선으로 두고 행동한다.
쌍용차 사태의 희생자들이 분향소를 차렸을 때
박근혜에게 충성하겠다 한 중구청장은 그들을 싹 쫓아냈고
대학생들이 등록금 때문에 죽어가도 아무도 그걸, 긴급하게 여긴 적이 없고
모두 살기보다 일부만 사는 게 효율에서 좋고.
자살자가 늘어나도 복지는 포퓰리즘일 뿐이고.
세 모녀의 죽음을 부른 제도를 폐지하는 데에 아직도 대통령이 이끄는 당은 그토록 망설인다.
죽음을 겪은 사람들을 ‘징징대는’ 정도로 취급하고
죽겠다 함께 살자는 사람들에게 물대포를 뿌렸다.
이곳에선 한번도 사람이, 사람의 생명이 우선이었던 적은 없었다.
아직도 이들에겐 사람이 죽는 것보다 중요한 게 많고, 대의가 더 많다.
‘사람은 함부로 해도 된다’ 는 이 시스템의 암묵적 의제였다.
평소의 시스템의 방향이 이렇게 움직이고 있던 상황에서
이럴 때 대통령이 ‘구조에 최선을 다하라’ 라고 지시를 하면,
밑의 사람들은 대통령이
진심으로 아이들의 생명이 걱정되어서 그런 지시를 내린 건지
‘구조에 최선을 다하라’라고 지시했다는 사실을 국민들에게 보여줘라 라는 뜻인지,
정부의 성과를 보여주기 위해 구조를 하라는 건지,
여론이 나빠지지 않게 잘 구조를 하라는 얘긴지,
헷갈리게 된다.
대책본부실에서 누가 장관에게 전했다.
“대통령께서 심히 염려하고 계십니다’
그러면 이 말이 ‘아이들의 안위와 유가족들의 아픔을 염려하고 있다는’ 건지
‘민심이 많이 나빠지고 있어 자리가 위태로워질 걸 염려한다는’ 건지
밑의 사람들은 헷갈린다.
대신 지시가 없어도 척척 움직인 건
구조 활동을 멈추고 의전에 최선을 다한 사람들
재빨리 대통령이 아이를 위로하는 장면을 세팅한 사람들
대통령은 잘했다 다른 사람들이 문제다 라고 사설을 쓸 줄 알았던 사람들.
재빨리 불리한 소식들을 유언비어라 통제할 줄 알았던 사람들.
구조에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보여지는데 애를 쓴 사람들.
선장과 기업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는 방향으로 여론몰이를 한 사람들과
순식간에 부르자마자 행진을 가로막고 쫙 깔린 진압 경찰들이다.
이것은 이들의 평소 매뉴얼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평소 리더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뭔지 알고 있었고 그것을 위해 움직였을 뿐이다. 그리고, 거기에 에너지를 쏟느라 정작 중요한 것을 놓쳤다.
내가 선거 때 박근혜를 뽑지 않았던 이유는 분명히 있다.
그가 친일파라서도 보수당이어서도 독재자의 딸이어서도 아니었다.
그녀가 남일당 사태 때 보여준 반응, 자신의 부친 때문에 8명의 사람들이 억울하게 죽었는데, 거기에 대해 일말의 죄책감도 안타까움도 갖지 않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사람의 생명에 대해 그토록 가벼이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대통령으로 뽑아선 안 된다는 그 이유 하나 때문이었다.
리더의 잘못을 여기에 있다.
밑의 사람들에게
평소 사람의 생명이 최우선이 아니라는
잘못된 의제를 설정한 책임.
셋째, 책임을 지지 않는 대통령은 필요 없다.
대통령이란 자리가 그토록 어려운 이유는 책임이 무겁기 때문이다. 막대한 권한과 비싼 월급, 고급 식사와 자가 비행기와 경호원과 그 모든 대우는 그것이 [책임에 대한 대가] 이기 때문이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조직에선 어떤 일도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리더가 책임지지 않는 곳에서 누가 어떻게 책임지는 법을 알겠는가?
자신이 해야할 일을
일일이 알려줘야 하는 대통령은 필요 없다.
사람을 살리는 데 아무짝에 쓸모 없는 대통령은 필요 없다.
결정적으로,
책임을 질 줄 모르는 대통령은 필요 없다.
덧붙임.
세월호 선장들과 선원들이 갖고 있다던 종교의 특징은
단 한 번의 회개로 이미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아무리 잘못해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것’ 이라 한다.
이거,
굉장히 위험한 거다.
죄책감을 느끼지도 못하는 대통령, 이들과 결코 다르지 않다.
사람에 대해 아파할 줄도 모르는 대통령은 더더욱 필요 없다.
진심으로 대통령의 하야를 원한다
'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
우리는 본능으로 안다. 누구 말인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대한민국 대통령이 한 말은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우리 대통령은 '진노'하고 '질책'할 뿐 책임을 지는 사람은 아니기 때문이다.
앞의 말을 한 사람은 미 대통령 버락 오바마다. 그는 대통령 취임 1년여 만에 큰 정치적 위기에 빠진다. 2009년에 발생한 '성탄절 테러 미수사건' 때문이다.
테러 용의자는 암스테르담을 출발해 미국 디트로이트로 들어오는 비행기를 타고 있었다. 문제의 노스웨스트 항공편이 착륙하기 직전, 그는 정체불명의 폭발물에 불을 당겨 터뜨리려 했다. 비록 불발에 그쳤으나, 비행기 안에는 278명의 승객이 타고 있어 위험천만한 상황이었다.
자신의 책임이라는 오바마, 그렇지 않은 박근혜
![]() | |
▲ 세월호 침몰사고, 안산 분향소 애도 물결 '세월호 침몰사고' 10일째인 25일 오전 경기도 안산 올림픽기념관에 마련된 세월호 참사 희생자 임시 합동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이 영정 앞에 헌화하며 애도하고 있다. | |
ⓒ 유성호 |
미국의 테러 미수사건과 한국의 세월호 침몰 사고는 크나큰 차이를 보여준다. '미수' 사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바마는 그 사건으로 인해 심각한 정치적 위기를 맞았다. 반면, 박근혜 대통령이 처한 상황은 '위기'와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인다. 당시 노스웨스트 탑승객을 모두 합한 것보다 많은 사람이 죽거나 실종된 상황에서도 말이다.
한국의 다수 언론은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지지가 여전히 견고하다고 말한다. 미흡한 사고대처로 지지도가 '폭락'했다고 하나, 여론조사 결과는 여전히 국민 과반 이상이 지지를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두 사건을 둘러싸고 드러난 두 나라의 가장 큰 차이는 지도자가 사고에 대처하는 방식이었다.
앞의 발언에서 보듯, 오바마는 사건의 책임이 자신에게 있음을 분명히 했다. 그리고 "한 개인이나 조직의 잘못보다는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그리고는 이에 대한 대책으로 혁명적인 시스템 정비를 약속했다.
당시 보수 정치권과 언론은 책임자 문책을 요구하고 있었고, 공무원 몇 명을 잘라내는 것은 자신의 책임을 벗고 여론을 잠재우는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했다. 그러나 오바마는 "책임 전가보다 문제 해결이 더 중요하다"며 손쉬운 선택을 거부했다. 대신에 그는 한국 돈으로 1조 원 이상을 들여 국내 공항은 물론, 미국과 연결되는 전 세계 주요 공항에 전자 장비를 설치하는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았다.
'질책'만 되풀이하는 '대책' 없는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은 달랐다. 그는 사건에 대해 '진노'하면서, '질책'과 '문책'으로 일관했다. 그는 "책임 있는 모든 사람들에 대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민형사상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책임 있는 모든 사람들" 속에 자신은 들어가지 않았으며, 사고재발을 막을 어떤 현실적인 방안이나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그저 막연히 "안전사고의 재발 방지"를 지시했을 따름이다.
대형 사건이 터질 때마다 한국의 신문은 '대통령 진노' 또는 '대통령 질책'이라는 표제어를 즐겨 싣는다. 그리고 기사에는 '관계당국자들은 침통한 표정이었다'는 내용이 단골로 따라 나오곤 한다. 다른 나라의 언론보도를 주의 깊게 살펴 온 사람이라면, 이런 표제가 얼마나 특이하고 '한국적'인지 알고 있을 것이다. 가을이면 모든 사회적 이슈를 제쳐놓고 텔레비전 뉴스 첫머리에 등장하는 단풍 소식처럼 말이다.
물론 메시지는 분명하다. '대통령은 현 사태를 심각하게 여기고 있다.' 정부와 언론 모두 이 말이 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국가적 재앙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이 있단 말인가?
'진노'와 '질타' 보도에는 정부와 언론의 무능과 비겁함이 뒤섞여 있다. 제대로 된 언론이라면 문제의 본질을 지적하고 체계적인 방안을 요구해야 한다. '진노'는 '분개'에 왕조적 전통의 경외감을 섞은 말이다. 대통령의 분노와 측근의 '침통한 표정'이 무엇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인가?
이처럼 구체성이 결여된 감성적 언어는 성난 여론을 누그러뜨리는 일시적 효과가 있을지 모르나, 결과적으로 대책 마련을 회피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는다. 정부는 언론을 이용해 '대책이 나올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한 뒤 국민들이 잊기를 기다리고, 같은 사고는 잠시 과거가 되었다가 다시 현재와 미래로 되풀이된다.
다른 참사 때도 똑같은 '질책'과 '근본적 대책' 주문
![]() | |
▲ 지난 21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사고 관련 책임이 있는 모든 사람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민형사상 책임을 반드시 묻겠다고 밝혔다. 사진은 관련 사실을 보도한 KBS 뉴스 화면 | |
ⓒ KBS |
2013년 3월, 전남 진도 앞에서 대형 화물선이 어선을 들이받고 도주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고로 고깃배는 두 동강이 난 채 침몰했고, 타고 있던 선원 7명 전원이 실종되었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직접 나서서 관련자들에 대한 '문책'과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했다.
같은 해 여름, 배수지 수몰 사고와 해병캠프 참사가 일어났을 때도 박 대통령은 "관리 감독 소홀로 국민 안전에 문제가 생겼을 시에는 엄중문책" 하겠다고 경고하며, "안전사고의 재발 방지"를 촉구했다. 지난 2월 경주 리조트 참사가 일어났을 때도 대통령은 "근원적 재발 방지를 위한 개선책"을 주문했다.
이번에도 재방송처럼 똑같은 경고와 주문이 되풀이됐을 뿐이다. 특별히 강력했다는 대통령의 이번 '진노'는 얼마나 효과가 있었을까? <경향신문>의 23일자 사설이 답해준다. 대통령의 질책에 혼비백산한 해양수산부가 해경 등 관계기관과 합동으로 현재 운항중인 연안여객선에 대한 긴급 안전점검에 들어갔으나, 그마저 형식적 절차에 지나지 않는 "부실투성이"였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자리 보전을 위해 눈치만 보는 공무원들은 반드시 퇴출시킬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대통령의 '진노'가 뉴스거리가 되는 것은 권력자 눈치를 보는 사회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진노'는 머잖아 잊히고, '침통'은 언제 그랬냐는 듯 쾌활한 기분으로 바뀔 뿐이다. '진노'와 '질책'이 물처럼 아래로 흐르기만 할 뿐, 유의미한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한다.
경주 리조트 참사 후 대통령이 "철저 조사"와 "재발 방지"를 주문했을 때, 정홍원 국무총리는 어떤 조치를 취했을까? 그는 이틀 뒤 "사고원인을 명확하게 밝혀 책임자를 엄정 조치하라"는 또 다른 지시를 내렸을 뿐이다. 얼마 후 경찰청장은 "책임자에게 엄한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라"는 지시를 전했다. 같은 지시는 표현만 바꾸어 '더 낮은 곳을 향해' 흘러갔을 것이다. 그리고 두 달 뒤 국민 수백 명이 수몰되거나 실종되는 비극이 일어났다.
책임 없이 권리만 갖는 지도자
영국 신문 <가디언>은 지난 21일자 기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대처방식을 문제 삼았다. 절차나 제도상의 허점을 지적하고 개선하기보다 개인(선장과 선원들)을 비난하는 모습이 기이해 보인다는 것이다. 글은 한국 대통령의 이해할 수 없는 태도가 '문화적 차이'에서 온 게 아닌가 반문한다. 적어도 "서구사회였다면, 국가적 재앙에 그처럼 늑장대응을 한 지도자가 무사하기 어려웠으리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지지도는 말할 것도 없고, 대통령 자리마저 위태로운 상황이 됐을 것"이라고까지 말한다.
나는 이 글이 몹시 불쾌했다. 한국의 '절대존엄'을 모욕해서가 아니라, 지도자의 무능과 무책임에 눈을 감는 것이 '아시아적 가치'라도 되는 양 써놓았기 때문이다. 도대체 언제부터 한국의 대통령은 무제한의 권리와 권력을 누리면서 책임은 지지 않는 희한한 자리가 된 것일까?
두 가지 가능성이 있을 것 같다. 하나는 본래 한국인이 대통령에 대한 아무런 기대가 없어, 그저 이따금씩 '용안'을 텔레비전 화면으로 보는 것만도 황송하게 여길 가능성이다. 다른 하나는 대통령이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를 합리적으로 판단할 정보가 없을 가능성이다. 첫 번째 경우에 해당하는 사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겠으나, 나는 두 번째가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어떤 국민도 대통령이 하는 일을 직접 볼 수 없다. 언제나 방송 카메라로, 신문의 글을 통해 만나게 된다. 언론의 역할은 전통적으로 '감시견'에 비유되어 왔다. 언론이 권력을 비판적 시각으로 보여주지 않는 한, 권력의 무능과 부패는 국민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이던 2년 전 일이다. '위기에 강한 글로벌 리더십'이라는 제목의 광고가 텔레비전에 등장했다. 공교롭게도 광고에는 풍랑 속 배가 등장한다. 천둥번개가 치고, 배가 맹렬한 바람과 파도 속에서 위태롭게 나아갈 때 이런 글귀가 화면에 새겨진다.
경험 없는 선장은 파도를 피해가지만
경험 많은 선장은 파도 속으로 들어간다
그것만이 파도를 이기는 방법임을 알기에...
지금 대한민국엔 위기에 강한 대통령이필요합니다
앞으로의 5년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좌우합니다
준비된 여성대통령 기호 1 박근혜
나는 알지 못한다. '파도를 피하는 것'과 '파도 속으로 들어가는 것' 중 어떤 것이 현명한 위기 대처법인지 말이다. 하지만 한 가지 사실은 분명하다. 대통령이 한국사회를 덮친 풍랑에 당당히 맞서기는커녕, 비판적인 여론의 입김조차 회피하려 한다는 사실 말이다.
또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지도자가 책임 회피로 시간을 보내고, 국민이 이에 침묵할 때 한국사회는 한 치 앞을 모르는 재난 속에서 침몰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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