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에서 바라 본 첫눈 오는 아침 풍경.
첫눈이 내리는 날이면 불현듯 생각나는 추억거리 하나가 있다.
2006년 12월 어느 눈 오는 날 쓴 글이다.
대학시절 군대가기전에 비교적 친하게 지내던 6명의 친구가 있었다.
여학생들은 여자만 있는 가정대 3학년(4명), 남자는 남자만 있는 상경대(4학년 형과 2학년 나)를 다녔다.
요즘 말로 동아리에서 알게 된 사이였지만, 1년여넘어 자주 만났고 친하게 지냈다.
분명히 애인 관계는 절대 아니었다. 그냥 격의없는 친구사이라고 해야 옳겠다..
70년대 초는 허구헌날 데모로 지샜던 시절이다.
아마도 절반도 학교를 다니지 못했고, 시험을 아예 안 본 학기도 있었다.
한 학기에 두달도 못다니고 휴교를 밥먹듯이 했으니 말이다.
자연히 학교밖에서의 만남이 자주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단둘이 만나적은 거의 ㅇ벗었다.(없었다를 빨리 치면 꼭 이렇게 나온다)
정말 친한 사이였지만 그 당시 대부분 학생들이 그러 했겠지만 항상 존칭을 사용했다.
동교동근처 바로크란 카페, 시내 나오면 영락교회앞 애플이란 카페에서
파라다이스나 마주앙, 아니면 맥주를 주로 마셨다.
비용은 주로 형과 동교동 주택에서 동생과 살고 있는 여학생(부산 출신)이 부담을 했다.
주머니가 비어 있던 나는 공짜로 밥과 술을 얻어먹는 재미로 아마도 따라 다녔던 것 같다.
동교동 집 따뜻한 아랫목에서 큰 담요밑으로 발만 집어 넣고, 동그란히 앉아 수다를 떨곤 했다.
동네 가게에서 산 술과 안주로(담배는 안 피웠다), 늦은 밤까지 놀곤 했다.
생각은 별로 나질 않지만, 무슨 할 얘기들이 그다지도 많았는지....
군대가기전 겨울 크리스마스 이브날(첫눈은 아니었으나 눈이 왔다),
그날도 동교동 집에서 밤을 지새고, 다음날 중앙극장에서 '엘비라 '란
영화를 거의 졸면서 보았다. 모짜르트의 감미로운 음악을 자장가삼아...
'우리 내년부터 매년 첫눈 오는날 12시에 이곳 애플에서 만나기로 해요'
누군가의 제안에 모두가 전적으로 찬성을 했다.
그리곤 나는 세달후 75년 3월에 군대를 갔다.
32개월의 군대 복무와 함께 우리들의 첫눈 오는날의 약속도, 그들과의 관계도 나의 뇌리에서 잊어졌다.
30년이 훌쩍 넘어 지난 작년(2005년)에, 동교동 살았던 여학생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것도 큰딸의 싸이월드로 부터 연락처를 알았다고 했다.
미국에 유학가 있는 애들 생활의 일면을 보고, 애들과의 대화를 위해 나도 싸이월드회원이 되었는데,
우연히 사람찾기에서 내 이름을 보고, 즐겨찾기에 있는 큰애 싸이를 통해
큰애 방명록에 글을 남긴것이라고 했다.
'아빠가 혹시 연세대 경영학과 나오지 않았니?'
우리가 30년만에 만나게 된 사연이었다.
그렇게 나는 할머니들을 만나게 된 것이다.
애인 관계도 아니었고, 단 둘이 만나는 것도 아닌데도 만나기 며칠 전부터 괜히 설레기도 하고,
왠지 가슴이 두근두근 거렸다고 해야 할 것이다.
만나고 들어 온 날.
당신 오늘 여자 만나고 온 것 같다는 집사람의 돌직구에 즉시 모든 사실을 이실직고 했었더랬다.
이후로 나는 정말 여자의 직감이란걸 맹신하고 있다.
우리 부부는 결혼후 퇴근시간과 어떠한 약속에도 예외없이 사전에 공유를 하고 있었는데,
그들과의 약속은 집사람에게 사전에 얘기를 하지 않았던게 분명하다.
한분은 칠레, 한분은 미국으로 이민가 살고, 두분은 여기에 살고 있다고 했다.
고등학교 형은 나와도 30년동안 연락이 두절된 상태고 동기 형들에게 물어 봐도 연락이 없다고들 했다.
칠레에서 잠시 귀국하여 네사람이 오붓하게 저녁을 함께 했다.
올봄에 미국 이민간 친구분이 들어와 네명이 또 한차례 저녁을 같이 하기도 했다.
사람은 곱게 늙어야 한다고들 하는데, 정말 곱게들 늙었다.
아직까지 일들을 하고 있으니...대단한 할머니(?)들이다.
무슨 얘기들을 한건지도 기억이 나질 않을 정도로 수다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30년만에 만났는데도 얘기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첫눈 오는 날 만난건 아니었지만, 이렇게 만나게 되는 인연도 있긴 있구나 싶었다.
'당신 얼굴이 아주 좋아요.
이렇게 늦게까지 할 얘기가 많았던 모양이지요'
겨울방학이라 귀국하여 집에 있던 큰딸 하는 말,
'아빠가 오랜만에 여자친구들 만났다는데 할 얘기가 왜 없겠어요?'
그래 할 얘기가 너무 많아 수시로 만나기로 했다.
칠레 친구가 1년에 한번쯤 잠시 귀국할때면 만나곤 했는데 그들을 만난지가 3년이 다 되어 간다.
주로 연락을 하던 분이 남편따라 말레이지아로 나간다고 하더니, 만남이 뜸해져 버렸다.
기다리면 또 언젠가는 꼭 연락이 올 것이야.
엊그제 왔던 첫눈은 첫눈이 아니다. 당연히 아니라고 믿고.
정말 첫눈이 오면 이번엔 내가 연락 함 해 봐야겠다.
며칠내로 정말 첫눈이 올것 같다.
낼부터 본격적인 추위가 올 모양이다.
집사람이 이번 주말 괴산집에서 김장을 한다고 했는데 걱정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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