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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행동기들과 서촌 문화 기행

by 단계와 넓은여울 2015. 5. 14.

외환은행 팔공회 입행동기들과 서촌 문화해설을 들었다.

문화해설사인 입행동기 손훈샘의 인솔하에 유익하고도 보람있는 체험을 하였다.

'서촌'은 경복궁 서쪽에 있는 마을을 일컫는 별칭으로 인왕산 동쪽과 경복궁 사이에 있는 청운동,

효자동과 사직동 일대를 지칭하는데 조선시대의 행정구역으로는 '북부준수방', '순화방', '의통방'

에 속하였고 '웃대'라고도 불렀다. 

1397년 이곳''준수방 장의동 본궁'에서 세종대왕이 태어 나셨기에 2010년부터 이마을 주민들이

'세종마을'이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겸재 정선과 송강 정철이 여기서 태어났으며 추사 김정희,

이상범, 이상, 구본웅, 이중섭, 윤동주, 박노수, 노천명, 이광수, 천경자 등이 거주하면서 문화예술의

혼을 이어갔다.  

현재는 600여채의 한옥과 옛 골목들이 현대와 공존하고 있는 서울의 명소이다.

세종대왕이 태어나신 곳이라고 세종마을이라 부른다.

서촌 갤러리 거리는 경복궁 서쪽 돌담길따라 이어지다 청와대앞 길에서 왼쪽으로 꺾어지면 계속 되고

갤러리들이 몰려 있기 보다는 듬성 듬성 있어서 우연히 발견하는 갤러리도 참 많다.

수성동 계곡은 청계천 발원지이며   물소리가 유명한 계곡이라 하여 수성동이라 불렀다.

조선시대 역사지리서인 동국여지비고, 한경지략 등에 명승지로  소개되고 안평대군의 집비해당

이 있던 곳이며 박윤목 등 중인층을 중심으로 저명한 시사(詩社)가 결성되는 등 상류층 전유물로

여겨지던 문학이 사회저변으로 확대되는 계기를 만든 조선 후기 위항문학(委巷文學)의 본거지로

알려져 있다.

지난 2010 1971년 건축돼 인왕산 조망권과 경관을 저해하고 있었던 낡은 옥인시범아파트 9동을

 철거하는 과정에서 서울시가 수성동계곡의 역사적 가치를 재발견하고 문화재(기념물 제31

돌다리 등)로 지정하고 복원 공사를 했다. 복원 공사는 옛 수성동 계곡처럼 암석 지형을 회복해

역사와 생태가 어우러진 역사문화공간으로 조성하는데 소나무 등 나무 1 8477그루를 전통

조경 방식으로 심어 소박하고 옛 정취를 가진 계곡의 모습을 되찾았으며, 자연미를 살리기 위해

자연 암반을 최대한 노출하고 기린교 돌다리의 모습도 회복했다.

인왕산 수성동계곡은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 모델로 알려져 있다.

 

통의동 백송 (1690년 300년, 1962. 12. 3 천연기념물 4호로 지정), 1990.7.17 태풍으로 쓰러짐.

(http://cafe.daum.net/Jone624/pJ45/73?q=%C5%EB%C0%C7%B5%BF%20%B9%E9%BC%DB&re=1

 에서 퍼옴)

영조가 왕위에 오르기전 지내던 잠저인 창의궁(彰義宮)터. 

추사 김정희(1786~1856) 집터 

조선시대 북부 순화방이었던 이곳에 위치한 창의궁은 본래 효존의 부마인 인평위 정제현의 집이었는데 숙종이 사들여 아들 연잉군(延仍君) 즉 영조에게 주었으며 영조는 왕위에 오른 후에도 자주 이곳을 찾았다고 한다.

생전의 통의동 백송 모습 (높이 16m, 둘레 5m)

1990년 태풍으로 쓰러진 백송을 살리려는 노력.

1993.3.24 천연기념물에서 해제되고 백송도 5월13일 해체되었다.

서촌의 매력은 골목이고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계속 변하고 있으며 살아있는 공간이다.

 

 

 

 

 

 

 

 

 

통인시장 골목

기름 떡복이집

치마바위

 

 

 

 

 

곰솔집에서 점심. (1인당 1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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