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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폴더

40년의 흔적, 그 상쾌한 가벼움

by 단계와 넓은여울 2015. 10. 23.

40....

참 짧지 않은 세월이다.

40년만에 친구를 만났다.

친구도 남자친구가 아닌 여자친구를 만난 것이다.

군대간 이후로 소식을 전하지 못했던 친구였다.

어찌 보면 그렇고 그런 친구일 수도 있다.

정말 친한 친구였다면 군대 갔다고 소식을 끊었을 리는 없겠지.

한편으로 생각하면 순진무구, 때 묻지 않은 친구 사이였다는 게 옳은 판단일 것이다.

군대 가기 전에는 이성 친구라기 보다는 클럽(지금의 동아리)친구였다. 내 생각에 말이다.

그 당시의 나란 존재는 열등감이 많았던 친구였던 것 같다.

누구랑 사귀어 봐야겠다는 생각조차도 하지 못하는, 데이트가 사치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내 자신이 스스로 돈을 벌어야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거였다.

그래서 빨리 5~6년이 후딱 지나가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캠퍼스 라이프는 없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그런 불쌍한 대학생이었다.

인생에서 행복이란 한 세대를 건너 뛰어서 온다고 믿고 있었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호주머니가 두둑해야 연애란 것도 할 수 있다고 믿었던 그런 대학생이었다.

 

입대함과 동시에 함께 잠시 어울렸던 여학생들과의 관계가 두절된 것도 자연스런

일이었을 것이다.

제대를 하고 나니 그 당시 여학생은 모두 직장여성이었을 것이고 나와는 상관없는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제대 후 남녀간의 사귐이란 애인은 있어도 친구는 될 수 없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나는 복학생이고 상대는 직장여성, 애인도 아닌데 만날 일이 뭐가 있겠는가?

그리곤 잊혀졌던 40.

내 블로그가 단초였다.

우연히 들어온 내 블로그에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얼굴이 있었다고 한다.

20, 21살의 청춘들.

물론 최근 TV 드라마 '두번째 스무살'처럼 사랑 얘기는 아니지만 실감이 되었다.

 

10여년 전에 같은 대학교에서 어울렸던 가정대학 여학생들과 30여년만에 만나게 된 적이 있었다.

그 당시 폭발적인 유행이었던 큰애가 가입한 싸이월드가 원인 제공자였다.

한 여학생이 그것도 유학중에 있었던 큰딸애의 싸이월드를 통해서 우연히 연결이 되었다.

졸업후 칠레로 이민간 친구가 들어올 때마다 연례행사로 3년전까지 3~4명이 만난 적이 있었다.

사실 그때는 젊어서 그랬나, 처음 만나러 갔던 날 괜스레 두근두근 거리기도 했었다.

집에 들어 왔을 때 집사람이 여자 만나고 온 것 같다고 얘기해서 바로 이실직고했었다. ㅎㅎㅎ

그 후 집사람과도 만난 적이 있게 되었다.

어쩌면 예기치 못한, 일어날 수도 있는, 일어났으면 하고 바라기도 할 법한 그런 만남이 있다.

살아가면서 마음을 편하게 하는, 푸근한 신선한 충격 요법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헌데 이번은 다르다.

까맣게 잊혀져 버렸던, 생각조차 한 적이 없었던 40년이었다.

두근거리는게 아니라 그냥 무언가 무척이나 매우 아주 반갑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뭔가 할 얘기들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랬다.

분명 잊혀졌는데, 암튼 살아가면서 한번은 만나고 싶은 그러한 사람들이 있었던 건 아닌지

그리 생각이 든다.

외환은행 본점 뒷편 365자동화코너 앞 벤치에서 만나기로 카톡을 넣었다. 

 

정시에 도착했다.

벤치에 앉아 있는 여자분들을 일견했으나 환갑이 넘어 보이는 여자는 없다.

어스름해지는 저녁 무렵 벤치에 앉아 지나가는 여자들을 본다.

늘씬한 아가씨, 아니지 40년전에는 미니스커트에 정말 저렇게 늘씬했지만 지금은 어림없을거야.

조금은 풍족해 보이는 여자들이 지나가야 할 텐데.

어떻게 변해 있을까? 금방 알아 볼 수 있을까?

저기 걸어오는 여성분.... 그래 걸음걸이를 보니 나이가 듬직해 보이네.

빙고, 정답이었습니다.

또 한분, 머리카락이 백발이네. , 빙고.

75년 군대간 후 만으로 40년이 훌쩍 넘어 버린 세월이었네.

 

우선 자기 소개부터.

한 사람당 1시간은 해야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겠는데...

2부는 담 번에 또 듣기로 하고. 담 사람...

애들 자랑은 자식당 30분으로 한정할까 보다.

 

남녀간에 친구가 있을 수도 있구나.

남녀간에 수다도 가능할 수가 있구나.

남녀간에 애인이 아닌게 더 편할 수도 있구나.

40년의 세월을 거꾸로 되돌릴 수도 있구나.

얘기를 4시간 동안이나 했는데 서로 들은 얘기가 별로 없는 것 같은건 왜 일까.

아마도 틀림없이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가 되어서야 만나다 보니 그런 것일까?

아니야, 뭔가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 같아.

분명 잊고 있었던 40년이었는데, 우리가 살면서 한번은 만나고 싶었던 그런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그래, 스무살이 되는 동안, 그리고 집사람을 만나기 전까지 집안 식구를 제외하고

갓 스물의 나이에 가장 많은 시간을 만났고 얘기했던 이성친구들이었기 때문일 것이야.

허구헌날 데모에 중간고사 치르면 휴교가 일상화 되었던 2년간의 대학시절이었다.

학교 다닌 날이 절반도 안되게 별로 없었으니, 나머지 날들을 오죽이나 자주 만났을까.

젊은날 같은 동아리에서 한가지 목표(동아리를 잘 이끌어 가는 것)를 위해 일 했던 사람들.

머리가 나쁜지 기억 나는 화제들은 거의 없지만, 수없이 많은 얘기들을 나눴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오늘 얘기한 것들은 이건 분명 무의식적인 수다(?)임에 틀림없어.

격월로 만나 수다를 떨어 보기로 하자.

1년에 6번씩, 10년이면 60, 20년이면 120, 80살 될 때면 100번을 만나게 된다.

학창시절 1년 반 동안 100번 이상은 만난 것 같으니 20년 동안 그만큼 만나 보기로 하자.

 

살다 보니 이런 재미있는 일도 일어나는구나.

집사람이 고향에서 국민학교와 남녀공학 중학교를 다녀 동창 모임, 행사, 경조사 등에

가끔 다녀오곤 한다.

국민학교 추억 한 조각 없는 나에게 남자동창들 얘기가 젊었을 땐 괜스레 질투도 나고

기분도 언잖고 그랬다.

허나 수년 전부턴 그리도 부럽고도 부러운 모임이고 갔다 오면 무슨 얘기들을 했나

궁금해지기까지 했다.

자주 얘기하는 남자동창들은 대부분 나도 알게 되었고 나보다 더 나이 들어 보이는

친구들이 나보고 형님! 할 때의 당혹스러움이 언제부턴가 기분 좋아짐으로 바뀌기도 했다.

집사람도 남자동창들과 만나면 이런 수다들을 떨까?

조금은 다를 것도 같다.

집사람은 서로가 반말을 하는데 우린 반말을 해 본 적이 없다.

집사람은 10대부터 친구로 쭈욱 이어져 왔고, 20대 친구였다가 40년만에 만난 사이다.

내가 좀 더 드라마틱하긴 하겠다.

집사람과도 함께 만나서 서로 얘기을 해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집사람이 괴산 집에 함 놀러 오라고 한다.

 

내가 평생 살면서 알던 이성친구는 이젠 다 들통이 나 버렸다.

대학때 연대 가정대 친구 4, 동아리하면서 함께 일했던 이대 친구 2, 퇴직하면서 만난 30대부터

70대까지의 숲해설가 친구 20여명 그리고 풀피리와 판소리 공부하면서 얼굴만 아는 몇 분들.

참 단순한 이성편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허나 이렇게 느즈막하게 만날 수 있다는게 어디 쉬운 인연이겠는가.

TV드라마 '부부클리닠 사랑과 전쟁'의 소재로 쓸만하지도 않은 늙으막에 말이지요.

재미있고 즐겁게 놀 일만 남았으니 얼마나 행복한가.

 

암튼 인생은 정말 살만하다는 건 true, 참이다.

 

매년 첫눈 내리는 날 정오에 만나요.   2006-12-05 18:18:26

조회 (413) | 추천 (14) | 퍼간사람 (1)   http://blog.joins.com/psb1026/7227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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