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가족이야기

아버지 산소에 다녀왔다.

by 단계와 넓은여울 2016. 2. 3.

새벽 일찍 형하고 천안공원묘원 아버지 산소를 다녀왔다.

죽은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영하 13도에 바람까지 부는 추운 공원이다.

그동안 눈이 많이도 내렸는지 산소 올라가는 길이 발목까지 빠진다. 

제단 위의 눈은 딱딱하게 얼어 붙어서 치우지 조차 못하였다.  

눈 위에 향을 피우고, 술잔을 올렸다.

땅 속은 좀 따뜻하실려나...

 

아버지가 돌아 가신게 2010.7.28이니 벌써 5년 반이 되었다.

나는 그동안 과연 몇번이나 아버지가 보고 싶었을까?

아버지는 나를 몇번이나 찾았을까?

그리고 아버지는 과연 나에게 어떤 존재였고 무엇을 남겨 주셨을까?

나는 아버지에게서 과연 무엇을 배웠을까?

나는 아버지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부모와 자식간에 무슨 존재라는게 있었을까마는,

남들은 참 많이도 생각나고, 할 얘기도 많고, 감동적인 얘기들도 많더니만.

솔직히 나는 생각나는게 별로 없다. 아니, 잘 모르겠다.

불효자식임에 틀림없다.

 

그래도 아버지를 생각하면 금세 복받쳐오르고 눈물이 나오는건 분명하다.

그건 아버지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아버지에 대한, 아버지 삶에 대한 불쌍함과 안타까움 때문이다.

내가 태어나 살면서 아버지에게 과연 즐거움과 행복이 있었을까 생각해 보면 분명 없었다.

90년을 사시면서 즐거웠고 행복한 순간이 없었을까마는 나에게 비친 아버지에겐 분명 없었다.

내가 취직하기 전까지는 아둥바둥 살아가는게 매일매일이 정말 힘들어 보였고,

내가 결혼해서는 손주 키워 주시는게 힘들었을테고,

손주들이 어느만큼 커서는 본인이 아파서 힘들었고,

어렵게 사는 자식땜시 힘들어 하시고, 화를 내시고, 짜증난 모습밖에 기억나는게 없다.

아버지의 꿈은 무엇이었고 무얼 생각하시면서 사셨을까?

그런 대화조차 해 본적이 없는 우리 부자는 과연 어떤 관계였을까? 

앞으로 생각해 보면 생각이 날까?

 

분명 뭔가 남겨 주신게 있고, 나에게도 중요한 존재였으며, 나도 아버지에게 중요한 존재였을 것이다.

이제라도 그걸 생각해 보고 찾아 보아야겠다.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어딘가에 정리해 놓아야겠다.

내가 죽은 후 나를 생각할 내 딸들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내 딸들에게 나는 그런 아버지로 남고 싶지 않기 떄문이다.

(2010년 2월 24일 어머니 생신날. 아버지 돌아가시기 5개월전)

 

 

 

 

 

 

 

 

아래 글을 쓴지 채 한달도 채우지 못하고 결국 아버지는 아파트 부근 요양병원에서 세상을 등지셨다.

은행 지인의 인천 모병원 상가로 문상 가는 도중에 전화받고 돌아 왔을때는 이미 돌아가신 후였다.

나를 비롯한 가족 누구도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 드리질 못하였다.

나는 불효자식이다.


요양원 가시게 되요. (2010-07-01 09:43:56 )

http://blog.joinsmsn.com/media/folderlistslide.asp?uid=psb1026&folder=9&list_id=11662409

 

아버님이 갈수록 움직이시길 싫어 하신다.
하루 24시간중 거의 20시간을 낮 시간에는 거실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계시고,
퇴근해 오면 방에 들어가 보료위에 누워 계신다.
물론 드시는 것이 별로 없으니 힘도 없고 기력도 쇠하니 누워 있는게 편하겠지만...
두분만 계시는 낮시간동안에는 수시로 심부름을 시키신다.
어머니도 65여년의 조건반사적인 습관으로 자동으로 일어나 챙겨 드린다.
질질 끌고 다니는 걸음걸이로.....
어제도 퇴근하고 옷을 갈아 입고 있는데, 무얼 또 시키는 소리가 들린다.
 
" 엄마한테 아무것도 시키시지 마세요."
" 또 뭐라고 큰 소리냐?"
" 아버지보다 엄마가 더 힘들어요. 왜 자꾸 엄마한테 시키세요."
어머니도 작년말 인공고관절 수술후 워낙 약하신지라 아직까지 걸음걸이가 정상이 아니다.
" 내가 뭘 시켰다고 그러냐."
" 아버지도 엄마처럼 집안에서라도 자꾸 걷는 운동을 하세요."
" 아따 효자 낳다. "
" 그럼요. 저만한 효자 있으면 나와 보라고 그러세요. "
" 나라고 하기 싫어서 안하냐. 하기 힘드니까 안하지."
" 전혀 안하시잖아요."
낮시간동안 집안일을 도와주던 도우미도 지난달부터 다른일이 생겼다고 오질 않는다.
" 거동을 못하면 누가 수발을 다 들겠어요."
" 걱정할 것 없다. 이젠 죽는다. 얼마 안 남았어. 죽으면 되지."
" 누구 맘대로, 죽고 싶다고 죽을 수 있대요?" 어머니의 촌철.
" 지금 바로 죽으면 얼마나 좋아. 나도 죽겠네."
" 사람 고생 시키지 말고, 걸음이라도 걷다 죽게 자꾸 움직이기라도 하라잖아요."
 
" 장모님도 지난주 요양원으로 모셨데요."
뇌졸증과 고혈압, 당뇨로 고생하시던 장모님이 거동은 물론 일어나기조차 안되어
할 수 없이 요양원으로 모시게 되었다고 집사람이 서럽게 울었다.
2등급으로 간병인이 매일 방문하였으나 본인 스스로 움직이질 못하니 장인어른꼐서도
대소변 등 수발을 매일 어떻게 하시겠는가.
 
엊그제 아침, 출근전까진 일어 나실질 않던 아버지께서 아침부터 엄마의 보행보조기를 끌고
거실을 왔다 갔다 하시고 계신다.
요양원 소리를 해서 그런가 보다.
다행이다. 저렇게라도 자꾸 움직일려는 노력이라도 하셔야 할텐데.
작년말 어머니의 고관절 수술이후 아버지도 급작스럽게 상태가 악화되어 동반입원하고선
외출은 커녕 집안에서조차 거동조차 하질 않으시려 하고 있어 나와 수시로 다툼이 잦았다.
어찌되었든 화장실이라도 다니시다 돌아가시더라도 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