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추석을 엄마는 병원에서 보내시게 되었다.
그리고 장기요양인정서(시설 3등급)가 건강보험공단에서 발급되었다.
지금 병원에서 더 이상 치료할 부분이 없어 다시 요양병원으로 옮기시게 된다.
산재병원이긴해도 간병비 부담도 그러하고 병원비도 요양병원보다는 좀 센편이다.
병원으로 옮기는게 엄마에겐 또 다른 쇼크가 올 수가 있어 걱정이다.
엄마 손을 꼬옥 쥐고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보니,
엄마가 90년 생을 사시면서 기억나는 일들이 뭐가 있었을까?
엄마한테 생전에 재미있고 즐거웠고 행복했던 날들이, 일들이 과연 있었을까?
엄마의 웃는 모습을 아무리 떠 올려 보려고 해도 안된다.
잘 듣지 못하시니 귀 가까이대고 나즈막하게 옆분들 들리지 않게 조용히 물었다.
'엄만, 사시는동안 제일 재미있고 행복했던 때가 언제였어요?'
'그러니깐 언제가 제일 재미있고 좋았었냐구요?'
'그러니까~ 사시는 동안 뭐가 제일 기억에 남느냐구요?'
"응! 재미있는 거, 기억이 통 안 나. 다 잊어 버렸어."
'그래도 기억해 봐요. 뭐가 제일 생각 나는데?'
"음~~ 미현이하고 종현이한테 이것 저것 참 많이 만들어 멕였는데.
얼마나 맛있게 먹던지. 잠실 살때 하고, 거 어디냐"
'상계동?'
"아니..."
'개포동?'
"응, 그래 개포동에 살 때"
"새우하고 당근하고 갈아서 주면 미현이가 정말 잘 먹었지, 종현이는 덜 먹고."
"처음에 잠실에서 젖 멕였다가 데려오고, 그랬지. 그건 기억이 제일 나."
'미현이 종현이 말고 옛날에 뭐가 제일 좋았어?'
" 다른건 하나도 기억이 안나."
" 다 필요없어. 미현 애미 건강하면 됐어."
"비 안 오지? 밖에 날씨가 좋은 것 같은데. 자네들 힘 들게만 하고 있으니."
두손 꼭 잡고 얘기를 자꾸 시키니깐, 오늘은 꽤 많이 얘기를 하신다.
손주들외엔 아무것도, 어느 누구도 기억하고 싶지 않을지도 모른다.
"답답해. 얼릉 팍 죽어 버리면 좋을텐데."
'내일 병원을 옮기셔야 해요. 여기가 좀 멀어서.'
"요양병원?"
'예, 지난번 계시던데. 형도 가깝고 누나도 가깝고. 여기가 너무 멀어요.'
'너무 걱정마시고. 여기선 더 이상 해 줄게 없데요. \'
'낼 형이 와서 함께 가시면 되요.'
"낼 누가 와?"
'예, 지난번 계시던 요양병원 가시면 절대 혼자 화장실 가면 안되요.'
'이젠 엄마가 움직일 수가 없어. 힘이 없어서 어쩔수없이 누워 계셔야 해.'
"원장도 움직이지 말라고 해. 저 간병인도 그러고."
'그러니까 나한테 좀 더 가까이 오는거니깐 걱정하지 말고. 다 가까우니까.'
"여기보다 더 가까워?"
'그럼 훨씬 가깝지. 몯가 다 가까워지는거예요.'
"그래, 이젠 가 봐. 애미 기다리는데. 애미는 괜찮지?"
'낼 아침에 형이 오면 요양병원으로 옮길거니까, 걱정마세요.'
"여기가 더 가까워?"
'아니, 요양병원이 훨씬 가까워요.'
병원 옮기면서 엄마한테 별 다른 일이 생기지 않아야 한텐데.
엄마의 종아리가, 허벅지가, 팔뚝이 내 엄지와 중지로 잡혀진다.
돌아가신 부모님에 대한 기억과 추억은 사람마다 다를것이다.
나쁜 기억은 빨리 지우고 좋은 추억들만 남겨 둘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세상에는 어머니, 아버지에 대한 애틋하고 감성적인 이야기들, 책들이 참 많다.
그걸 가만히 살펴보면 살아계셨을때 해 드리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나는 왜 별 감흥이 없을까?
다른사람들은 하늘나라에 계시는 부모님을 생각할 때 그리도 추억들이 많을까?
유독 나 혼자만 없는걸까?
그들이 가식일까, 아니면 내가 불효자일까?
당신의 건강과 평온은 안중에도 없이 그리 고생하시고,
자식들을 위해 평생을 바치셨는데 왜 내겐 부모님에 대한 추억거리가 없는가고.
그 시대의 삶이 그러했겠지만, 남보다 훨씬 더 힘든 삶을 사셨던건 맞는 말이다.
암튼 나를 이만큼 살도록 공부를 시켜 주셨으니 더 바랄게 없이 고맙다.
잠깐만이라도 살아계신다면 아버지께 말씀드리고 싶은게 있다.
아버지, 그래도 가족들에게 재미있는 추억거리 하나쯤 만들어 주시지 그러셨어요.
물론 그럴만한 마음의 여유, 금전적인 여유가 없었겠지요.
평생을 저와 함께 사셨으면서도 저에게 제대로 된 부탁 하나 못하셨잖아요.
단순하게 사는 분도 참 많더만, 무에 그리 온갖 경우의 수를 다 따지고 사셨어요.
변명을 하자면, 사실은 제가 뭔가 해 드리고 싶었어도 아버지가 무서워서 못했어요.
아버지는 제겐 늘 무섭고, 말 붙이기 어렵고, 가까이 하기 싫은 존재였거든요.
제가 아버지 곁에 다가갈 수 있을 나이가 되었을땐 아버진 이미 누구의 얘기도 들으려 하지
않는 고집으로 똘똘 뭉쳐진 그러한 쇠약한 노인이 되어 있으셨어요.
엄마와의 말다툼이 곧 일상의 전부가 되어 계셨지요.
그래도 한번쯤은 우리 가족 추억거리 하나쯤은 만들어 놓을 걸 후회가 되요.
아버지, 어머니에 대한 기억할 만한 거리가 생각나질 않고 없다는게 참 서글퍼요.
제대로 된 대화 한번 기억이 없어요, 생각이 나질 않거든요.
암튼 자식으로 미안합니다. 제대로된 자식의 도리를 못한 것도 한으로 남고요.
'가족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냥 날아가 버렸으면 좋겠다. (0) | 2016.11.19 |
---|---|
올 생각하지 마라. (0) | 2016.10.14 |
여보~~ 천천히 같이 갑시다. (0) | 2016.09.12 |
아버지, 이젠 엄마 데려가셔도 됩니다. (0) | 2016.09.08 |
또 혼자 화장실 가실거예요? (0) | 2016.08.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