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 부부
박선배 psb1026@hanmail.net
25년을 살고 있는 아파트는 올림픽공원 근처에 있어서 이곳으로 이사 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다. 수시로 산책이나 조깅을 할 수 있는 공원이 주변에 있다는 게 정말 큰 행복임에는 틀림없다. 저녁 먹고 운동삼아 공원내 몽촌토성을 한바퀴 돌고 오면 6키로 정도되는데 1시간20분 남짓 걸린다. 언제인가부터는 보폭이 현저히 줄어들어 집사람보다 뒤쳐져 걷고 있는 자신이 서글퍼지곤 한다. 부지런히 쫒아가는데도 늘 10미터는 앞서 걷고 있다, 그동안엔 내가 늘 앞서 걸었지만 그래도 두 세걸음 정도였는데, 요즘 집사람이 너무 심하다 생각하기도 한다. 며칠전 앞에서 팔짱을 너무 꽉 끼고 너무나 천천히 걷는 남녀를 앞지르게 되면서, 스치듯 옆얼굴을 봤는데 나이차이도 많이 나는 것 같고 살짝은 어울리지 않는 커플이란 생각이 들었다. 불현듯 10여년전쯤 산책 중 집사람과의 대화가 생각나며 피식 웃음도 나왔다. 저 남녀는 불륜이 분명해.
큰딸이 결혼해서 사는 집이 풍납동에 위치하여 공원을 가로질러 가면 4키로 정도로 걸을만 하여, 먹을거리 등을 가져 줄 때도 우리가 걸어갔다 오곤 했다. 2015년 동우회에 출근하게 되면서 가끔 큰딸 집으로 바로 퇴근하는 경우가 종종 생겼다. 집사람이 손주 목욕시키는 걸 도와주고 거기서 저녁 먹고, 산책을 겸해 올림픽공원을 가로질러 걸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면 참 좋았다. 2년후 손주들이 어린이집을 다니게 되면서 아예 우리와 함께 살게 되어 공원 산책은 일부러 시간을 내야만 되었지만, 올림픽공원이 앞마당이나 마찬가지가 된 셈이다..
아내와 35년 동안 같은 직장을 다니다 보니 내 아는 사람은 거의 백% 집사람이 안다고 보면 된다. 부부동반 하길 좋아하고 습관이 되어 고교 동창, 대학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운동도 같이하고 숲해설가도 함께했으니 난 마느님 부처님 손바닥 안에 있는 셈이다. 결혼 후부터 내 자신과 관련하여 거짓말을 해 보질 못했다. 모든 게 하기 나름, 길들이기 마련이란 얘기는 분명 진리다. 사실 그래서 더 편하고 좋다. 집사람 앞에선 늘 홀랑 벗고 있는 기분이니 안 좋을 수가 있겠는가. 암튼 우리 사이엔 화제가 무궁무진 끊임이 없다고 봐야 한다. 가끔 할 얘기가 없다 싶으면 아는 사람 한 두명 잘근잘근 씹으면 한 시간은 그냥 간다. 사실 좋지 않은 나쁜 취미이긴 하지만 산책하면서는 그런대로 애기하는 맛이 있기도 하다.
평일인데도 공원을 거니는 사람들이 꽤 많았고, 몽촌토성 아랫길보다 조금이라도 시원한 윗길 산책로로 걷는 사람들이 훨씬 많아 보였다. 북문을 거쳐 남문 쪽으로 난 도로를 따라 걸으며,
"사람들이 우릴보고 불륜이라고 하겠는걸..."
"아니, 왜요?"
"나이 든 커플이 평일 날 이렇게 둘다 정장을 하고 구두 신고 공원을 걸으니 말이지."
"아니, 누가 불륜으로 보겠어요. 불륜이면 이렇게 떨어져서 걸어요?"
맞아. 불륜관계면 팔짱을 꼬옥 끼고 걷겠지. 불륜은 화악 탓다가 금방 꺼지면서 시들어버리는 성냥불인게야. 우린 아직 연탄불이지.
아내와 팔짱을 꼬옥 끼고 걸어 본지가 얼마나 되었을까? 연애할 때라도 팔짱을 끼었는지 가물가물하다. 올림픽공원을 그렇게 천번 이상 걸었으면서도 항상 내가 한 두어걸음은 앞서서 걸었었지. 바로 그리움의 간격이라고도 하는 나무 사이의 간격처럼 우린 일정거리 만큼 떨어져서 걸었드랬지. 바라보기만 해도 좋은, 지킬건 지키는 그런 사이처럼 말이지. 그래서 지금까지 함께 살아 온 것 처럼, 그리고 함께 평생을 살아갈 천생연분 부부인게 틀림없는 거야. 우린 그렇게 믿고 살아 가고 있는게지.
"우리 팔짱 한번 끼고 걸어 볼까?"
"여보, 둘이서 꼬옥 팔짱 끼고 걸으면 확실히 불륜인게 틀림없다니깐요. 호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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