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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

결코 잊지 않으려고(10)

by 단계와 넓은여울 2014. 6. 2.

 

세월이 지나면 또 잊혀질까봐 이 일은 결코 잊지 않으려고 블로그에 남겨 놓는다.

아직도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모르는 지도자. 가슴이 없는 지도자와 그 추종자들.

어디부터 손을 써야 할지를 모르는 정부. 정말 내가 사는 울 나라가 맞나요?

아!  답답하다. 궁민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박선배님이 심재환님을 인용해 링크를 공유했습니다.
결코 잊지 않으려고... 공유합니다.
"4층 복도서 죽은 내딸...중요한 단서..."
www.ohmynews.com
지난 21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강대 이냐시오 성당에서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 미사가 봉헌됐습니다. 서강대 교목처(처장 김용해 신부)가 마련한 이번 추모미사에서는 세월호 참사...

"4층 복도서 죽은 내딸...중요한 단서
세월호 참사 잊지 않겠다 말해주세요"

[전문] '세월호 참사' 유가족 대책위 유경근씨 발언

지난 21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강대 이냐시오 성당에서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 미사가 봉헌됐습니다. 서강대 교목처(처장 김용해 신부)가 마련한 이번 추모미사에서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 대책위 대변인을 맡고 있는 유경근씨가 참석해 강론을 대신했습니다. 다음 글은 유가족 대책위 대변인이자 희생자 고 유예은양 아버지인 유경근씨의 발언 전문입니다... 편집자주

 
 유가족 대변인이자 세월호 희생자 유예은 양의 아버지인 유경근 씨. 그는 강론을 통해 "남은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서 유가족들이 이 나라를 떠나는 결정을 하지 않도록 함께 해달라"고 당부했다.
ⓒ 정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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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은이 아빠 유경근입니다. 무슨 말씀을 전해드려야 할까 고민이 많았지만 생각나는 대로 말씀을 드리는 게 좋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결혼한 다음 해에 하은이와 예은이를 낳았습니다. 이란성 쌍둥이라서 그런지 생김새, 성격이 판이하게 다릅니다. 첫째인 하은이는 주관이 뚜렷하고 고집이 세서 지기 싫어하는 편입니다. 예은이는 엄마를 닮아 유순하고 언니랑 싸워도 항상 지고, 양보하는 성격이었습니다.

17년을 키웠고, 잘 자라줬습니다. 예은이는 가수를 하고 싶어 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유명한 가수가 될 거라고 했는데, 그 또래는 누구나 그런 꿈을 갖기 때문에 그냥 귀엽게 봤습니다. 중학교에 진학하고 고등학교에 가서도 꿈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할까 고민을 했지만 결국 하고 싶은 것을 못해서 평생 후회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 지원해 주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예은이는 학교에서 늦게까지 공부하고, 노래를 배우고 연습하면서 힘들지만 재미있어 하고 항상 밝은 얼굴이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사고 당일, 그 이후의 이야기를 궁금해 하십니다. 그래서 몇 차례 이야기를 하기도 했지만, 이야기를 하다 보면 많이 힘이 듭니다. 대변인을 맡고 있지만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무엇을 해야 가장 바쁠까, 무엇을 해야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정신없이 살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자원을 하게 됐습니다. 덕분에 아침부터 새벽 2~3시까지는 너무 바빠서 잘 지냅니다. 하지만 일이 끝나고 분향소에 가서 아이 얼굴을 보고 들어가 아침까지 혼자 있는 시간은 견디기 힘이 듭니다.

저도 신앙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하느님 나라를 믿고 제 아이도 예수님 곁에서 영생을 누릴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견디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그 아이가 마지막 순간 어떤 상황에서 어떤 과정과 고통을 겪으며 세상을 떠났는지, 보지 않았지만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은이는 2학년 3반이었습니다. 3반 여자 아이들은 모두 4층 다인실에 묶여 있었고, 9시 30분경 예은이의 전화를 받고 문자를 주고받다가 저와는 10시 9분에 연락이 끊기고 엄마와는 10시 17분에 연락이 끊겼습니다.

연락 내용은 "아빠, 배가 기울어졌어, 구명조끼 입으래, 방안에서 가만히 기다리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선생님 옆에 계시니, 구명조끼 입었니, 방송은 뭐라고 하니"라고 물었습니다. 잠시 후에 "해군이 왔어. 우리 층 구조할 차례야. 순서 기다리고 있어요. 빨리 구조돼서 나갈게요. 보고 싶어요, 사랑해요"라는 문자가 마지막 연락이었습니다.

연락을 듣고 바로 진도로 출발했습니다. 어떻게 갔는지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5시간 거리를 3시간 만에 도착했고, 구조자들이 온다는 체육관에서 아이를 찾았습니다. 버스가 3대 왔고 사람들이 내렸지만 아이가 보이지 않아 묻고 찾아다녔습니다. 한 아이가 "예은이는 분명히 나왔을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제 바로 뒤, 두세 명 뒤에 서 있어서 제가 나왔으니 예은이도 나왔을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기다리면 올 거예요"라고 말했지만, 나오지 못했습니다.

아이들은 해경이 왔다고 해서 복도에 나가서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지만 제 아이 앞에서 구조가 끊긴 겁니다. 해경이 철수하고 약 30분 후 배가 뒤집어지면서 침몰을 한 것이죠.

제 아이는 4층 복도에서 못 나오고 생을 마쳤습니다. 일 주일 만인 4월 23일 아침 8시 3분에 저희 아이가 잠수사 손에 이끌려 나왔는데, 찾은 장소도 4층 복도였습니다. 이 말씀을 굳이 드리는 이유는 제가 꼭 드려야 할 이야기의 중요한 단서이기 때문입니다.

"못 견디는 이유, 살릴 수 있던 아이를 수장 시켰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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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21일 오후 5시 15분 서강대 이냐시오 성당에서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미사와 추모제가 열렸다.
ⓒ 정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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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가족들이 견디지 못하는 이유는, 그 아침에 다 살릴 수 있는 아이들을 그냥 수장 시켰기 때문입니다. 해경이 와서 다른 조치를 취할 것도 없었습니다. 그냥 소리만 한 번 치면 되는 거였어요. "빨리 나와라, 바다로 뛰어들어라" 이 한마디만 외쳤어도 이 아이들은 살았습니다.

더군다나 목포 해양경찰청장이 무전으로 4차례나 승객들을 밖으로 나오도록 방송하라고 지시했음에도, 현장에서는 아무도 그 무전을 받고도 전달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밝혀내야 할 진상 중 하나입니다.

제가 진도에 8일 정도 있으면서 첫날부터 해경 책임자와 해수부장관을 붙들고 이야기하고 울부짖으면서 간절하게 대응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해경에서 일관되게 하는 고정 멘트가 있었습니다. 가족들의 요청은 "그저 빨리 꺼내 달라"는 것이었는데 그때마다 해경이 했던 말은 딱 한 마디였습니다.

"가족 여러분이 원하는 방법을 가족 여러분들이 모두 동의해 주시면, 저희는 최선을 다해 지원하겠습니다."

먹을 것을 달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이들을 구조할 수 있는 방법을 빨리 내서 꺼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거기에 대한 해경의 답변 내용이 그랬고, 첫날부터 지금까지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결국 4~5일 만에 해경 스스로 실토했습니다. 구조 책임을 맡은 지휘 장교가 "사실 우리 해경은 능력이 없습니다. 방법을 모릅니다. 장비도 없습니다"라고 저에게 직접 말했습니다.

결국 가족들이 수많은 구조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안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비전문가들이었지만 인터넷에서 찾고 사람들에게 수소문을 해서 설계도를 그려 가며 해경에게 제시했습니다. 그러면 해경은 감사하다며 받고는 답이 없습니다. 그 다음날 다시 물어보면 검토는 해봤지만 잘 모르겠다면서 얼버무리고 자리를 피합니다. 이 부분도 밝혀져야 할 부분 중 하나입니다.

지난 월요일 박근혜 대통령이 대국민담화를 발표했습니다. 그 이틀 전에는 유족 대표단 17명이 청와대를 방문해서 1시간 30분간 면담을 나눴습니다. 처음부터 면담을 요청한 이유는 한 가지였습니다. 항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이야기 좀 들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해경, 해수부장관, KBS를 찾아갔지만 누구도 우리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통령이라도 우리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갔습니다.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것은 현재 남아 있는 실종자들을 구조하는 것입니다. 실종자들이 바다에 갇혀 있는데 다른 일을 어떻게 합니까. 대책위? 진상규명? 그들이 살았건, 죽었건 가족의 품으로 돌려놓고 다음 일을 해야죠. 그래서 실종자 구조가 가장 급하고 중요한 일이라고, 그것부터 해결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 담화에는 그 언급은 단 한 마디도 없었습니다. 많은 화려한 수사들이 있었고 심지어 예상치 못했던 해경 해체가 있었음에도.

"아, 정부가 이 일을 정말 크게 보는구나"라고 속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걸 원한 것이 아닙니다. 대통령에게 요구한 것은 남아 있던 실종자를 빨리 꺼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진상규명을 철저히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실종자 구조나 진상규명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고, 무엇을 없애겠다, 만들겠다는 이야기만 있습니다. 그러나 진상규명이 철저하게 이뤄지면 그 다음 것들은 자연히 이뤄지는 것입니다. 진상규명이 철저하게 이뤄지고 나면 처방과 대안이 나오는 것입니다. 환자가 병원에 왔는데 진찰도 하지 않고 약과 주사처방만 잔뜩 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과연 우리의 아픔을 공감해 주는 사람이 누가 있는가. 저는 공감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대통령뿐만 아니라 우리 이웃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떠한 상황이고 마음인지 내 것으로 알고 공감할 때 진정한 처방이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공감한다고 말하고 눈물도 흘려줬지만 결과를 놓고 보면 정말 우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 너무 힘듭니다.

담화가 발표되는 그 시간, 진도에 있는 가족들은 목을 놓아 통곡했습니다. 그래도 대통령은 우리를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우리는 버려졌구나, 우리는 다 잊혀졌구나……

여러분께 드리고 싶은 말씀은 세월호 참사는 이제 저희의 일이 아닙니다. 희생된 300여 명과 그 가족들만의 일이 아닙니다. 이 일은 이제 모든 국민의 일이 되었습니다. 지금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또 다시 다른 일이 일어나서 내 아이에게,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정권, 새누리당, 청와대, 대통령의 문제가 아닙니다. 만일 정치인, 대통령을 바꿔서 해결된다면 대통령 물러나라고 소리 쳐야겠죠. 그렇게 해결된다면 강제로라도 끌어 내려야겠죠.

정권을 지키느냐의 문제가 아닌 대한민국의 생사 문제

그러나 이것은 정권을 지키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이 침몰하느냐 다시 떠오르느냐의 문제입니다. 정권의 문제가 아니죠. 그러나 특히 정치하는 이들이 이 문제를 접근하고 와서 하는 말은 항상 정권의 문제를 이야기합니다. 어떻게 하면 정권을 지킬까, 또는 끌어 내릴까.

그런 단순하고 가벼운 문제가 아닙니다. 단순히 정권의 존재유무가 아니라 대한민국이 살릴 수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임기 5년짜리 정권의 문제가 아닙니다. 저희는 정권 비판을 하기 싫어서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그 정도로 쉬운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꼭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이 일은 이미 여러분의 일로 받아들이고 계시니, 영원히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걱정하고 위로해 주십니다. 하지만 전혀 와 닿지 않습니다. 진심은 알지만 실제로 들리지 않는 목소리입니다.

제가 제 딸을 이렇게 억울하게 잃었는데 어떻게 견딥니까, 어떻게 잊습니까. 이겨낼 수 있겠습니까? 이겨낼 수 없습니다. 적응해야죠. 제 딸이 없는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스스로 적응하고 최면을 걸어야 합니다. 어떤 말도 위로가 될 수 없습니다. 다만 이렇게 이야기해주십시오.

"한 달 뒤에도 잊지 않겠습니다. 1년 뒤에도, 10년 뒤에도,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그것이 저희에게는 가장 큰 힘이 됩니다. 저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잊혀지는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잊혀지고 우리가 잊혀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대한민국이 잊혀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잊지 않겠다고 위로해주십시오. 그리고 함께 목소리를 내주셔야 합니다. 무엇이라도 해주셔야 합니다. 이것은 강요가 아니라 이미 그렇게 마음먹고 계시기 때문에 말씀드립니다. 노란 리본 달아주십시오. 내가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을 남들에게 보여주십시오.

서명운동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세계 각지에서, 전국은 물론 서명이 오고 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렇게 잊지 않기 위한 행동을 해 주십시오. 이 문제는 몇백 명 가족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도 24시간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야만 희생자들을 위로할 수 있고 그렇게 해야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주 작은 힘들이 모이면 큰 힘이 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많이 도와주고 참여해주셔서 대한민국을 살고 싶은 나라로 만들고 싶습니다. 이 일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마무리 되지 않는 것이 확실해지면, 저도 마찬가지고 우리 가족 중 상당수는 이 나라를 떠날 것입니다. 남은 아이들은 지켜야지요. 그런 결정을 내리기 전까지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그런 결정을 내리지 않기 위해서 제 모든 것을 바칠 것입니다. 제 평생의 과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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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유경근 | editor@catholicnews.co.kr

 

 

 

박선배님이 Sylvia Lee님을 인용해 링크를 공유했습니다.

진실을 알게 되었네요. 왜 이리도 현실을, 현장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지 답답할 뿐이네요. 언제나 Basic으로 돌아갈려나요.
[기자칼럼] ‘안전 컨트롤타워 수장’에 친박 정치인, 지금 제정신인가 - 경향신문
m.khan.co.kr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405301054551&code=940202 

 

[기자칼럼] ‘재난 컨트롤타워 수장’에 친박 정치인, 지금 제정신인가2014.05.30 10:54

고위 간부가 무전기로 “(세월호 승객을) 구조하라”고 했지만 현장 해경은 “경사가 급하고 배가 침몰하기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회신했다.
4월16일. 진도 바다 세월호 안에는 아들, 딸같은 국민이 생사를 넘나들며 필사의 구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명령을 거부하고 선내에 진입해 구조하는 것을 포기했다.
119소방대원은 어떨까. 시쳇말로 ‘닥치고, 일단 구해’ 이것이 그들의 ‘대응명령 1호’다. 시한폭탄 같은 ‘골든타임’ 앞에서 자신의 목숨을 생각할 시간은 없다. 반사작용처럼, 지시가 없어도 늘 그래왔다.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는, 국민이 원하는 공무원의 표상 그대로다.
하지만 해경의 반사작용을 불러오는 주체는 수사기관이다. 무늬만 ‘바다 119’이지 단속과 수사를 해 온 영원한 ‘갑’이다. 머릿속으로 ‘범인이 누굴까’를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 (중국어선을 단속하는 등 해경의 혁혁한 공로와는 다른 부분이다.)
대형 재난사고가 났을때 소방관과 해경 심리가 ‘세월호 참사’를 통해 밝혀진 셈이다. 해서도 안될 실험이, 실제상황에서 확인됐다.
참사 후 박근혜 대통령이 만드는 국가재난안전처는 ‘빛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해경의 ‘갑질 구조’가 소방관에게로 번질까 우려스럽다.
대통령은 이질적인 두 조직을 모두 해체해 비빔밥을 만들고 있다. ‘비빔밥’도 융합만 제대로 되면 금상첨화다. 그러나 ‘민물소방헬기’와 ‘짠물해경헬기’로 대변되는, 태생적으로 다른 조직을 어떻게 비비겠나.
현장 ‘컨트롤타워’가 제대로 작동하게 하는 데는 행정·정치의 권위적인 ‘파워’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확실한 지휘명령 체계를 가동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다. 생사를 넘나드는 사고현장에서 호흡을 함께 해온 ‘동료애’와 ‘계급’의 비빔밥에서 나온다. 소방대는 군과 같은 조직이다. ‘제복의 힘’이 현장을 지배한다. 사단장이 전투를 지휘하는 파워는 양 어깨에 달린 두 개의 별과 지휘봉 끝에서 나온다. 대통령 같은 권위가 통하지 않는다.
정부는 소방방재청을 무장해제, 해체하기로 했다. 검찰과 경찰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은 그 위에 검찰총장과 경찰청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통령은 소방관들의 수장인 소방방재청장(차관)을 1급으로 강등, 곧 지휘봉을 회수한다. ‘탁상행정 전문가’인 행정직의 지휘를 받고 결재용 보고서 작성에 열을 올려야 할지 모른다. 사명감에 명령을 버무린 힘으로 움직이는 소방관의 자괴감이 클 수밖에 없다. 원동력과 구심력이 모두 뽑혔다. (밥그릇 싸움과는 다른 차원이다.)
다음 아고라 청원에 현장 소방관 3만명이 벌써 서명한 것은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 공심의 표출이다. 소방관은 그동안 국가직으로 전환해달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부당한 처우를 받아도 국민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놨을 뿐이다.
국가직과 지방직의 차이는 간단하다. 국가직은 임용·승진은 물론 월급까지 대통령이 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찰(해경)과 군인은 국가직 공무원이다. 지방직은 시·도지사와 구청장이 ‘생살여탈권’을 틀어쥐고 있다. 지방직은 공천권을 쥔 국회의원의 눈치를 보는 단체장의 지휘를 받는다. 소방관이 국회의원이 납시는 행사장의 의자를 닦는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해경은 국가직 신분으로 안전처로 신분증만 바뀐다. 지방직 소방관은 어떤가. 그대로 아무런 변화가 없다. 눈가리고 아웅이다. 그것도 안전처에 몇명 안되는 소방방재청 직원(국가직 322명)만 옮겨간다. 재난현장에 있는 소방관은 그대로 지방직(3만9200명)이다. 안전처로 흡수되는 국가직 해경은 1만명. 소방직은 안전처 내에서 ‘찬밥’이 될 수밖에 없다.
지방직 소방공무원의 현실을 보자. 돈이 많은 지자체는 생명을 보호하는 소방관에게 위험수당을 몇푼이라도 더 줄 수 있다. 가난한 지자체는 구닥다리 구급차조차 쉽게 바꿀 수 없다.
소방서장(지방직)에게 군·경찰을 움직일 수 있는 지휘권을 준다고 한다. ‘지나가는 개도 웃을 법한’ 황당한 발상이다. 시골 소방서장(지방직 4급)이 국가직을 어떻게 지휘하나. 평시에도 소방관을 얕잡아보고, 깔보고 무시하는 그들이다.
웃지 못할 코미디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대통령이 안전처 초대 장관에 ‘힘있는 인물’을 기용하겠다고 한다. 친박(친박근혜) 핵심 최경환 전 원내대표를 비롯해 정권실세들이 줄줄이 하마평에 오르고 있다. 한술 더 떠 국회를 기웃거리는 “특임장관 역할도 해야 한다”고 한다.
‘컨트롤타워를 강화하겠다’면서 산소통 메고 화재현장 한번 가보지 않은 정치인을 임명한다는 말에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답은 간단하다. 무전기로 현장을 닦달하고, 보고서를 주문하는 행정가나 정치인이 아니다. 평생을 그랬듯, 붕괴 위기 건물과 지하철 현장에서 ‘눈빛신호’를 경험한 지휘관이 필요하다.
2009년부터 지금까지 재난현장에서 소방관 30명이 사망하고 무려 1626명이 부상을 입었다. 양심이 있다면 소방관들이 차별을 받지 않고, 최소한 동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산소 마스크를 쓰고 국민을 한번도 구하지 못했거나, 소방호스를 잡아보지 않은 사람은 안전처 장관 자격이 없다. 국민이 안전한 나라, 미국 국민들이 존경하는 직업 1위 ‘소방공무원’에 해답이 있다.
< 김창영 기자 bod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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